[기획] 큰 덩치가 짐… 저무는 ‘점보’ 시대

입력 2014-04-07 02:13


지난달 31일 오후 3시15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전일본공수(ANA)의 NH126편 B747-400D가 착륙했다.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가 비행기 양쪽으로 물을 뿌리자 무지개가 그려졌다. 일본의 마지막 B747 여객기로 이날 21년간 운행을 마감하고 퇴역했다.

‘점보(Jumbo)’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보잉사의 B747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1969년 12월 팬암(Pan-Am)에 처음 인도된 B747은 이후 새 시리즈를 내놓으며 40여년간 장거리 비행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이전 여객기의 두 배가 넘는 최대 5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울 수 있어 루프트한자, 일본항공(JAL), 에어프랑스 등 세계 유수의 항공사로부터 주문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모두 1500대 이상(화물기 포함)의 주문이 이뤄졌다.

하지만 인기를 끈 요인이었던 큰 덩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새 시리즈가 나왔지만 첫 인도 이후 40년이 넘으면서 기종이 노후화됐고 4개 엔진을 사용하면서 연료 효율도 좋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가 급등에 따른 타격도 받았다. 화물기를 포함해 가장 많은 108대를 인도받았던 JAL이 2011년 3월 B747여객기를 퇴역시킨 데 이어 93대를 주문했던 싱가포르항공도 2012년 4월 마지막 B747 여객기를 퇴출시켰다. 일본 양대 항공사인 ANA마저 B747을 퇴역시키면서 B747 여객기를 운용하는 일본 항공사는 더 이상 없다.

인기가 시들면서 B747 주문도 뜸해졌다. 보잉이 성능을 개선해 새로 내놓은 여객기 B747-8은 현재 루프트한자가 거의 유일하게 운용하고 있는데 주문 실적이 예상보다 많지 않다. 6일 보잉에 따르면 2006년 첫 오너를 받은 B747-8은 8년 동안 모두 51대의 주문을 받아 이 가운데 20대를 인도했을 뿐이다. 2005년부터 주문이 이뤄진 화물기 B747-8F를 포함시켜도 전체 주문 대수가 120대에 불과하다.

B747이 한창 인기를 끌던 1990년 한 해에만 122대의 주문이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올해는 B747-8F 단 1대에 대해서만 주문이 이뤄졌다. 보잉은 새 모델의 주문이 기대를 밑돌자 생산 일정도 조정했다.

B747이 떠난 자리는 탑승객 수는 적지만 연료 효율이 좋은 B777 새 시리즈, 차세대 항공기 B787, A330 등 다른 모델이 채우고 있다. 승객은 덜 실어 나르지만 2개의 엔진으로 연료비가 적게 드는 중형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기 중에는 B747보다 승객을 더 많이 태우면서도 2006년 운항을 시작해 상대적으로 연료 효율이 좋은 A380이 B747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B747을 애용했던 싱가포르항공이 처음으로 A380을 도입한 후 19대를 쓰고 있다. 싱가포르항공은 추가로 5대를 더 인도받는다. A380은 전 세계에서 324대의 주문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모두 18대의 B747 여객기를 운항하고 있다. 평균 기령이 17∼18년으로 두 회사 모두 대체 비행기를 검토 중이다. 다만 대한항공은 A380과 B787 외에도 B747 시리즈를 계속 보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12월 B747-8 5대를 주문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5대를 추가로 제작 의뢰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