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드러난 복지사각지대의 아픔

입력 2014-04-07 02:59

서울 중랑구 김모(73) 할머니는 지난달 중순 수면제 일곱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두 번째 자살 시도였다. 지난해 봄 수면제를 먹었을 땐 중랑노인사회복지관 독거노인생활관리사가 발견해 목숨을 건졌고, 이번엔 텅 빈 방에서 혼자 죽은 듯 누워 있다 꼬박 하루 만에 기적처럼 눈을 떴다.

할머니는 40년 전 이혼한 뒤 혼자 살면서 빌딩 청소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렸다. 서울시 명의로 돼 있는 작은 단층집에서 지내며 연간 250만원 세를 내왔다. 그러다 2년 전 대장 질환이 생겨 청소 일을 그만뒀다. 이후 할머니의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월 9만8000원이 전부였다. 식비부터 수도·전기·가스 요금에 병원비까지 9만8000원으로 해결해야 했다.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지난해 봄 수면제를 먹은 것이다.

첫 번째 자살 시도 후 우울증 초기 진단을 받았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할머니에게 복지관의 ‘우울증 예방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할 것을 권했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복지관에 나가 음악치료와 상담치료 등을 병행하며 새 삶의 희망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몸이 아픈 70대 노인을 고용하는 곳은 없었다. 복지관에서 소개해준 공공근로 일자리도 아파서 못 나가거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난방도 못 한 채 홀로 냉기 서린 방에서 갇혀 살다시피 했다.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는 게 이상해 대장암을 의심하며 병원에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8∼9만원 검사비용은 한 달 수입의 전부였다.

결국 1년 만에 두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깨어난 할머니는 유일한 말벗인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게 수면제 먹은 걸 털어놨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생을 끝내려 했을 때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 다시 살아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는데 1년이 지나도 현실은 그대로”라며 “이제 도움 받을 곳도 없고 건강은 점점 악화돼 나쁜 생각만 든다”고 토로했다.

이에 복지관의 박수화 사회복지사가 할머니를 돕기 위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뜻밖의 장애가 나타났다. 이혼하면서 남편이 데려간 자녀 세 명이 가족관계등록부에 ‘부양 자녀’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40년간 얼굴도 못 본 자녀를 우리 법은 ‘부양해주는 가족’으로 간주한다. 미국에 있는 언니가 할머니 통장에 6000만원을 입금했던 기록도 걸림돌이었다. 언니가 개인적 이유로 입금한 뒤 곧 출금해 갔는데 법은 이 돈을 할머니의 ‘수입’으로 판단했다.

남은 방법은 연락이 끊긴 자녀들을 수소문해 ‘부양료 청구소송’을 하는 것뿐이었다. 박 복지사의 설명을 듣던 할머니는 “40년 넘게 연락이 끊긴 아이들한테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소송을 내냐. 길러주지도 못한 내가 그럴 순 없다”며 거절했다.

박 복지사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사회공헌코너 ‘희망해’에 김 할머니 사연을 올려 시민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목표 액수는 1년 집세와 생활비를 합친 480만원 정도다. 6일 현재 모금 서명이 완료된 상태로 며칠 안에 모금이 시작될 예정이다. 박 복지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이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차례 자살 시도를 보며 할머니를 도우려 뛰어다녔던 복지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모금운동뿐이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