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제적으로 체면 손상된 국가인권위
입력 2014-04-07 02:31
국가인권위원회가 세계 120여개국의 인권기관 연합체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정기 등급 심사에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위가 2004년 ICC에 가입한 뒤 계속 최상위 등급을 받았고, 한때 ICC 부의장국을 지낼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국가 체면이 크게 손상된 평가를 받은 셈이다.
5일 인권위에 따르면 ICC 승인소위원회는 인권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다양성, 시민단체 등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고 인권위원과 직원 활동에 대한 면책 조항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등급 결정을 보류한 사실을 최근 우리나라에 통보했다. ICC는 5년마다 각국 인권기관의 활동을 평가해 A·B·C등급을 매긴다. B등급으로 강등되면 ICC의 각종 투표권을 잃게 된다. 보통 70여개국이 A등급을 받는 점을 고려하면 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갖고 있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구이다. 국회 4명, 대통령 4명, 대법원장이 3명을 각각 선출하거나 지명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장과 위원들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했고, 이들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조사할 막강한 권한도 갖고 있다.
그런데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한 뒤 독립기구로서의 위상과 역할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편향된 이념을 갖고 있다거나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ICC의 지적 사항도 인권위의 독립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면 현 위원장이 스스로 진퇴를 결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또 인권위는 국회·행정부와 협의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기 바란다. 개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하반기 ICC의 재심사 때 큰 낭패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