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촌스러운 신제품 발표회 장면
입력 2014-04-07 04:01
지난달 25일 LG전자가 신제품 발표 행사를 가졌다. 행사 뒤 담당 사장과 부사장이 제품 옆에 여성 도우미와 함께 서 있는 사진이 언론에 게재됐다. 두 임원은 평상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차림이었고, 도우미 옆에 무표정한 얼굴로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30년 기술이 총화된 전략제품’이라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에어컨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지난달 24일에는 현대자동차가 신차 발표회를 개최했다. 행사 이후 미디어에 나온 것은 사장과 부사장이 여성 도우미 2명과 함께 차 양쪽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두 사람 역시 모델들과 나란히 서서 아무런 제스처 없이 정면만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획기적인 제품이라 했지만 이날 사진만큼은 “좀 구식이구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업들이 평소 미디어에 제공하는 행사 사진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3일 LG화학과 현대차가 ‘친환경 오토캠핑장’을 만들겠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는데, 함께 배포된 사진이 영 볼품없었다. 회사 건물 밖에 자동차 한 대를 배경으로 양쪽 회사 임원 등 4명이 찍힌 사진인데, 비까지 내리고 바닥과 배경도 젖어 있어 퍽 우중충해 보였다.
국내 기업들의 프레젠테이션이나 행사 때 비춰지는 경영진이나 행사 전경은 글로벌 기업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양복을 입어도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처럼 멋지게 입고 카리스마 넘치게 이야기할 수 있거나, 아예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조스처럼 청바지를 입어도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 실력을 갖춘 국내 기업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지난 2월 삼성전자 임원진이 스페인에서 갤럭시5 발표와 관련해 개최한 기자간담회 때 행커치프가 꽂힌 고급스러운 ‘갤럭시’ 양복에, 건배주로 미국의 ‘갤럭시’ 와인을 공수하는 등 나름의 이벤트를 벌여 눈길을 끌긴 했다. 좀 억지스럽긴 해도 경영진의 제품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했다.
기업들의 행사 진행 모습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준비했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그런 걸 보여주기 위해 때론 연출이 필요하고, 극적인 요소도 동원된다. 잡스가 2008년 맥월드 행사 때 무대에 평범한 누런 서류봉투를 들고 나와선 얇은 맥북 에어를 꺼내들었을 때의 파격이나 2011년 아이패드2를 발표할 때 디자인의 혁신성과 ‘편안함’의 상징인 ‘르 코르뷔지에’ 의자를 무대에 등장시킨 계산된 무대 연출도 제품의 우수성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잡스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경영인들은 제스처 하나, 걸음걸이와 표정, 어투와 단어까지도 고르고 골라 철저히 연습한 뒤 언론 카메라 앞에 서곤 한다.
언론 배포용 사진 자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선 오너의 아들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면서 2세 사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허둥댄 적이 있다. 다른 그룹은 한 전시장을 방문한 오너의 동정과 관련한 사진을 보내왔는데 사진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등장해 어수선해 보였다. 준비가 안돼 있었다는 증거다. 반면 몇 년 전에 만난 한 기관장은 외국에서 활동하다 국내에 들어온 인사였는데, 그는 유독 얼굴사진을 자신이 보내주는 것으로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유명 패션잡지 ‘보그’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었는데, 당초 쓰려던 사진과 비교했을 때 퀄리티가 월등히 뛰어났다.
밖에 비춰지는 경영진이나 기업 행사장의 모습은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한다. 보다 엄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고, 또 ‘연출’할 필요도 있다.
손병호 산업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