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획] 2·3학년 교육과정 통합안, 일반고 구해낼까

입력 2014-04-07 02:56

‘무(無)학년제’가 선행학습금지법을 비켜가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달 25일 기자들과 만나 고교 2·3학년 교육과정 통합을 언급하면서 무학년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문 교육감은 “선행학습금지법으로 일반고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해결책 중 하나로 2·3학년 교육과정을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을 연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3학년 과정이 통합되면 원하는 과목을 2학년이 미리 들을 수 있어 선행학습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3학년 교육과정 통합의 핵심은 ‘무학년제’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은 무학년제 운영 모형을 만든 뒤 연구학교를 통해 적합성을 검토해 이를 확대한다는 ‘고 2·3학년 무학년제 교육과정 운영 방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무학년제 운영으로 선행학습금지법 저촉을 피하는 한편 향후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개정에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현행 법률상 ‘무학년제’의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26조다. 제26조 ①항은 ‘학생의 진급이나 졸업은 학년제로 한다’고 되어 있으나 ②항에서는 ‘학교의 장은 관할청의 승인을 받아 학년제 외의 제도를 채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별도의 법 개정 없이도 학교장 판단에 따라 당장 시행이 가능하다. 이에 근거해 실제 일부 고교 등에서는 무학년제를 시행 중이다.

무학년제의 근원은 참여정부 당시로 올라간다. 2007년 8월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중장기적 교육과제를 담은 ‘미래교육 비전과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적인 내용이 고교 무학년제 및 학점이수제였다.

이명박정부 당시인 2009년에도 무학년제 시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은 특목고 제도개선 연구팀은 ‘만민의 탁월성 교육을 위한 고교체제 개편’ 시안을 내놨다. 연구팀은 시안 중 일반계고 개편 방안에서 영어와 수학 과목에 무학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연구가 학교 현장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현행 대학입시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학년제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 이유로 꼽힌다. 교사 수급이나 교실 확보 등의 여건상 무학년제를 쉽게 도입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교육부에는 무학년제 담당자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6일 “무학년제를 전담해 고민하는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무학년제 운영이 구체화되면 정책 방향이나 지원 방안 등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무학년제가 당장 다수의 학교 현장에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는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논의에 불을 지핀 문 교육감이나 서울시교육청이 이른 시일 내 추진 방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도 있다.

‘무학년제’ 도입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심도 있는 논의가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무학년제’는 수요자 중심의 개념으로 제기됐으나 이명박정부의 ‘무학년제’는 수월성 교육의 일환으로 제시되는 등 제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선행학습금지법 저촉을 피하기 위한 단기적 수단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학년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세종=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