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목사의 시편] 덕(德)의 영성
입력 2014-04-07 02:15
후삼국의 지도자 궁예(?∼918) 왕건(877∼943) 견훤(867∼936) 이 세 사람은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난세의 영웅들이었다. 같은 무장(武將)이면서도 타고난 기질은 각기 달랐다.
궁예는 천재적인 전략가로서 철원을 중심으로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와 평안도 충청도 일부를 지배하면서 한때 큰 세력을 이루었으나 포악한 성품과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는 등 패악을 일삼아 민심을 잃고 결국 신하들에 의해 쫓겨나 백성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견훤은 용장이었다. 927년 공산전투에서 왕건에게 크게 승리하고, 의성부를 공격해 빼앗는 등(929년) 후삼국 전쟁의 승자가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견훤은 조직을 강화하고자 신하인 공직의 두 아들과 딸을 잡아다 불로 지져 다리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또 왕위를 넷째 아들 금강(金剛)에게 물려주려 하면서 이에 반발한 장남 신검(神劍)이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었다. 부하 장수들이 그를 떠났다. 다잡은 후삼국 통일의 영광스러운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들과 달리 왕건은 상대인 적도 안심하고 자신의 운명을 내맡길 수 있는 덕(德)의 사람이었다. 신라 경순왕은 그에게 천년의 사직(社稷)을 헌납했고, 자식들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백제의 견훤 또한 왕건에게 투항한다. 왕건은 견훤을 상부(尙父)로 모시며 극진히 대접했고 견훤의 아들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와 최후 결전을 벌여 후백제를 멸하고 통일을 이뤘다.
채근담에서 말하길 “덕과 재능을 겸비하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는 재능보다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에는 “有德有人(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여들고), 有人有土(사람이 모여들면 영역이 생기고), 有土有財(영역이 생기면 돈은 들어온다)”고 했다. 돈 벌기에 앞서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덕본재말(德本財末)의 사상이 바로 이것이다. 이 사상을 몸소 실천한 상인이 매헌 박승직(1864∼1950)이다. 그는 “하늘이 도움을 주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하고,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사람과 화목(人和)만 같지 못하다”며 덕을 앞세운 경영으로 사업을 크게 일궜다.
성경은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더하라”(벧후 1:5)고 가르친다. 우리 개신교는 가톨릭의 공덕(功德)사상에 반대해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이란 문구를 지나치게 교리화한 나머지 교회의 전통 중 하나인 수덕(修德)이나 수도(修道)의 영성 등 좋은 전통마저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필자가 목회 개척 초기부터 이른바 ‘3대 목표와 5대 비전’을 세우고 그중 하나로 ‘수도사(修道士)적인 영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표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목회자들이 앞장서 재가수도사(在家修道士)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생활 속에서 덕을 실천함으로써 ‘행함으로 믿음을 증거하는’ 야고보의 영성이다.
<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