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나토] NATO VS 러시아… 新냉전?

입력 2014-04-05 02:41


“지금까지는 러시아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만난 졸트 라바이 나토 공공외교국 파트너국 담당 부조정관은 나토가 직면한 상황을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달 18일 러시아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은 유럽에서 집단안보체제를 수호해 온 나토에는 충격이었다. 1990년대 냉전 종식으로 나토는 소련을 주축으로 한 공산권의 서유럽 침략을 방어하는 대(大)전제가 사라졌다고 보고 주요 임무를 회원국의 안전보호에 비중을 둔 집단방위에서 위기관리와 협력적 방위에 뒀다.

나토는 앞으로 당분간 유럽에서는 전투 행위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나토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기들을 관리하고 회원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적 방위활동을 벌였다.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태와 1999년 코소보 사태에 적극 관여하고 아프가니스탄 안정화를 위한 국제안전지원군(ISAF) 임무를 수행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나토는 올해 ISAF 임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임무를 설정할 예정이었다.

미래 방향 설정을 놓고 고민하던 나토에 러시아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은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격이 됐다. 라바이 부조정관은 “러시아의 크림 사태에 대한 대응은 새로운 임무가 될 것”이라며 “나토의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라바이 부조정관에 이어 만난 제이미 시어 신안보위협실 사무부총장은 “크림 사태는 협업적 안보에 중점을 뒀던 나토의 관심을 집단안보로 뒷걸음치게 했다”고 개탄했다. 이미 마무리됐다고 간주했던 과제를 다시 수행하게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는 “나토는 이 모든 임무를 함께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토가 그간 수행해 온 일과 다시 제기된 집단안보 임무도 함께 추진한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지만 그 일이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크림 사태로 기로에 선 나토 본부에 기자가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8시40분. 방문객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정문 앞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장치가 삼중으로 돼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가 두 컷을 채 찍지 못하고 경비요원의 제지를 받았다. ‘보안위반’이란다. 동행했던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관계자는 맞은편 내부공사가 진행 중인 아치형 건물을 찍으라고 권했다. 2016년쯤 새 나토 본부가 될 곳이다.

곧 출입구가 열렸지만 카메라와 이동식 저장장치(USB), 휴대전화 등 ‘기밀취재’에 동원될 만한 기기들은 모두 방문객 출입수속사무실에 남겨 놓아야 했다. 공보실 직원의 안내로 간 곳은 거대한 나토 본부에서 유일한 보안해제 구역이었다. 공보실과 기사송고실, 뉴스편집실, 회의실, 도서관, 식당과 우체국 등이 있었다. 폴란드와 헝가리 대표부도 있었지만 출입은 안 됐다.

이날 아침 나토 본부는 분주했다. 평소의 월요일과 달리 지난 주말에 연쇄적으로 열린 크림 사태 관련 회의에 대한 후속조치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고 식당에는 아침을 먹으며 의견을 나누는 직원들이 100명은 넘어 보였다. 4일 창립 65주년을 맞은 나토의 고민은 깊어 보였다.

브뤼셀=글·사진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