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께 ‘5개’ 정도는 인사 해야지”… 한예종 교수 채용에 수억대 뒷돈 오갔다

입력 2014-04-05 03:17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장이던 김현자(67·여)씨는 2011년 2월 ‘한국무용 분야 교수 채용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학교 교무과에 제출했다. 김씨는 그 무렵 정모(49·여)씨에게 연락해 “교수 채용이 있을 테니 지원해 보라”고 권했다. 또 박종원 당시 한예종 총장에게 “정○○이란 제자가 있는데, 총장님이 한 번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정씨는 1989년 ‘김현자 춤 아카데미’ 회원으로 들어간 이래 20여년간 김씨를 스승으로 모셔왔다.

한예종은 같은 해 4월 전임 교수 채용 공고를 냈다. 당시 다른 교수가 ‘김 원장이 제자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 채용을 미루자’고 건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무용 분야에 지원한 38명 가운데 실기 심사까지 통과한 이는 정씨가 유일했다. 정씨는 평균 85점을 훨씬 웃도는 93.8점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전공심사위원장으로서 심사를 총괄했다. 정씨는 결국 그해 8월 교수 임용 통지를 받았다.

김씨는 정씨에게 “총장님한테 ‘5개’ 정도는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5개는 5000만원을 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김씨는 2억원이 입금된 통장을 건네받았다. 인출할 때 쓸 현금카드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지도 전달됐다. 김씨가 채용 과정에서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봐준 데 대한 사례금 명목이었다.

정씨의 남편인 사립 S대 교수 김모(55)씨도 인맥을 동원했다. 김씨는 채용 공고 직후 동료 교수였던 조희문(57) 전 영화진흥위원장을 만나 “박 총장에게 잘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 전 위원장은 박 전 총장의 대학 동문이다. 그는 박 전 총장에게 수차례 청탁 전화를 걸었으며, 김씨에게는 “잘 될 것”이라고 전해줬다. 조 전 위원장은 이 대가로 2000만원을 챙겼다. 또 김씨로부터 “총장에게 인사하고 싶다. 전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1억원을 추가로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김씨와 조 전 위원장을 구속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모두 3억2000만원을 쓴 정씨 부부는 불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2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10월 재임용을 거부당해 현재 이의절차를 진행 중이다.

박 전 총장의 경우 범행 가담 사실을 부인하는 데다 뒷돈이 건네진 흔적이 나오지 않아 무혐의 처분됐다. 검찰은 ‘배달사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와 조 전 위원장은 돈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한예종 신입생 선발과정의 특혜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연구비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지난 2월 자살한 한예종 이모(57) 교수에 대해서도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