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창조하신 뜻, 푸름이가 증거입니다… 시각장애인 양지호 목사와 안내견
입력 2014-04-04 17:56 수정 2014-04-05 10:20
지난달 31일 시각장애인 양지호(36) 정인교회 목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인천 서구 서곶로의 교회 앞 2차선 도로는 인근 세무서 방문차량으로 붐볐다. 인도는 따로 없었다. 교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아파트 상가 3층에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위험한 지역이라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그는 일반인보다 빠른 걸음으로 안내견 ‘푸름이’와 능숙하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교회 앞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잘 모르는 곳이라도 푸름이가 있으니 큰 불편은 없습니다.” 푸름이는 주변 소리나 냄새에도 흔들림 없이 시종일관 차분했다. 주인의 보폭에 맞춰 보행하며 양 목사의 왼쪽 곁을 지켰다.
내 몸의 일부
황백색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푸름이는 2009년 양 목사와 만났다. 애교가 많은 푸름이는 양 목사뿐 아니라 가족, 방문객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하지만 목줄 겸 손잡이인 하네스와 노란 안내견 조끼를 입으면 태도가 변했다.
“안내견은 하네스를 입을 때와 벗을 때를 구별해요. 하네스를 입으면 냄새 등 외부 자극에 반응 안 하고 보행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하네스를 벗은 집 안에선 개의 본성으로 돌아오지요.”
양 목사는 18살이던 1996년 안내견을 처음 만났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4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은 그는 지팡이에 의지해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인파 속에서 걷다보면 지팡이가 휘거나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다. 그러던 어느 날 양 목사는 시각장애인 지인이 안내견과 함께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개를 좋아했던 그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분양 신청을 했고, 그의 첫 안내견 ‘대부’를 동반자로 맞았다.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 안내견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분양 전 신청자에게 사전면담을 진행한다. 신청자의 학업계획과 건강상태, 성격 등을 고려해 이에 잘 맞는 안내견을 분양하기 위해서다.
안내견은 지팡이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충성심이 강한 대부는 그의 등하굣길의 안전을 책임졌다. 2001년 만난 두 번째 안내견 ‘호수’는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 호수 덕분에 양 목사는 지금의 아내와 만났다. 찬양단 모임에 참석했던 아내가 호수에게 관심을 보이다 그와 부부의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과 동시에 만난 푸름이는 전도 대상자의 마음을 여는 역할도 한다. 지역주민에게 전도를 나설 때마다 동행하는 푸름이는 양 목사 대신 사람들과 시선을 맞춘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정을 꾸리기까지 3마리의 안내견과 함께한 그는 이들을 ‘내 몸의 일부’라 했다.
“안내견은 제 몸의 일부 같은 존재예요. 그래서 누군가 푸름이 얼굴을 만지면 농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제 눈을 만지냐고요. 제게 있어 안내견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입니다.”
동반자를 위한 희생
안내견은 대개 7∼8년간 일하고 10살쯤 은퇴한다. 올해 푸름이는 9살이다. 내년이면 은퇴할 나이지만 건강해서 2∼3년 더 안내견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양 목사는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웬만하면 10살 때 은퇴하길 원한다고 했다.
“안내견을 떠나보내는 건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 위한다면 보내주는 게 맞겠다 싶어요. 이 아이들은 동반자를 위해 젊은 시절을 온전히 희생했어요. 식탐이 많은데도 정해진 사료만 먹어야 하고, 배변 욕구도 조절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활동을 가장 많이 절제하지요.”
동반자를 위한 안내견의 희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부상을 당해도 고통을 거의 표현치 않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의 안전을 염려해서다. 얼마 전 양 목사는 푸름이가 다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외출했다 교회로 오는데 누군가 ‘개가 피 도장을 찍고 다닌다’는 말을 해요. 짖거나 걸음을 멈췄으면 바로 알았을 텐데. 푸름이는 주춤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들으니 뒷다리 발바닥이 다쳤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참았을까요. 이를 생각하면 노후만큼은 새로운 가족에게 보내 마음껏 즐기며 편하게 지냈으면 해요.”
주기적으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지만 안내견과의 이별은 그에게 여전히 익숙지 않은 숙제다. 한번은 은퇴한 대부가 그리워 보호가정을 찾았다. 그런데 양 목사를 그리워한 대부가 그와 헤어진 뒤 열흘간 앓아누웠다. 이 일 이후 그는 그리워도 쉽사리 은퇴견을 찾아가지 못했다.
은퇴한 안내견의 수명은 건강 상태에 따라 제각각이다. 최장수 안내견의 경우 17살까지 살기도 한다. 대부나 호수는 은퇴 후 오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피부병과 욕창으로 1년 넘게 고생한 대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양 목사는 대부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대부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떤 악천후에도 항상 저와 함께 다녔어요. 그래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고생시킨 거 아닌가, 그래서 병으로 고생한 거 아닌가 해서요.”
18년간 안내견과 동행한 양 목사는 영혼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을 경시하는 시각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 했다. 그는 신앙인일수록 동물과 자연이 왜 창조됐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데 있어 영혼 유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영혼이 없다고 공기를 하찮게 대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역할은 자연을 책임지고 다스리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반자를 향한 희생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