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가지치기는 과감할수록 좋다

입력 2014-04-05 02:35


온 나라가 빠른 봄꽃 소식으로 들뜬 느낌이다. 매화꽃이 필 무렵 벚꽃까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뉴스가 봄바람을 타고 빠르게 북상했다. 해마다 등온선을 따라 여러 날씩 시차를 두고 올라왔던 개화 소식이 올해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남녘땅 진해와 서울 여의도에서 같은 때에 벚꽃을 즐기게 되었다니, 놀랍다. 우려하던 아열대 기후대의 북진이 점점 빨라지는 모양이다.

올해로 고향 강화에 내려와 농사지은 지 4년째지만 여전히 초보 농부를 면하기 어렵다. 이젠 들쭉날쭉 변화하는 봄철 날씨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외려 더 민감해진다. 선배 농부들이 청명 곡우 따지고, 절기와 달력을 헤아리며 과학적으로 농사짓는 것과 달리 너무 자주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서둘러 농한기 방학을 끝내고 강화로 왔다. 그동안 겨우내 서울에서 지냈다. 전업 농부가 아니다 보니 농촌에서 달리 할 일도 없고, 난방용 기름 값이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평생 서울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일없이 겨울 농촌을 지내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마침내 봄이 찾아온 것은 반가웠지만 너무 일찍 기지개를 켰다는 소식에 조바심이 들었다.

어느새 땅에는 야생풀이 그득하게 돋아났다. 3월 중순이 되어서야 밭을 정리하고, 서둘러 농사 준비를 했다. 쇠똥과 유기농 퇴비로 거름을 하였더니 땅 힘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당장 검은 비닐을 씌워 양파 모종을 하고, 완두콩도 심었다. 곧 고구마도 심을 계획이다. 성큼 다가온 봄소식으로 초조해진 아우 농부를 보면서 이웃에 사는 친형님이 일손을 거들어 주셨다.

농사를 시작한 첫 해, 형님 도움으로 빈 터에 과일 나무를 심었다. 사과, 배, 복숭아 그리고 포도를 각각 다섯 주씩 묘목을 꽂았다. 올해가 4년차이니, 드디어 첫 결실할 욕심을 부린다. 강화도 과일은 해풍을 맞는 탓에 아주 맛이 좋다고 한다. 대량 생산하는 대표적 지역 과일을 손꼽기는 어렵지만, 이만저만한 과일들조차 품질만큼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화 농부들의 자랑이다.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가지치기를 하였다. 너무 조심조심한 탓일까. 형님이 가지치기와 관련해 일장 훈수를 두신다.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길이의 가지라도 퍽 아깝다는 생각에 주저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형님은 대뜸 시범을 보여주신다. 세상에! 얼마나 과감하게 잘라내는지, 초보 농부로서는 흉내 내기가 어렵다. 그 눈대중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실력이 아닌 연륜 탓일 듯하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형님은 전지를 잘해야 수확이 좋다면서 그 단호함을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빗대었다. 과일나무 가지치기는 ‘대통령이 조각하는 일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눈앞의 가지를 못 잘라내면 장차 열매가 부실한 것이 자명하니, 당장은 견실해 보이는 가지라도 서슴지 말고 잘라내라는 지론이었다. 과일 나무는 자기가 만들어낸 그늘조차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지당한 말씀이기는 한데, 그런 과단성이 몸에 배려면 풋 농사꾼은 면해야 가능할 듯하다.

그동안 배운 바에 따르면 농사일은 결코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농사를 시작한 이듬해, 서툰 농사꾼이 무리하게 일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허리 고장이 난 일이 있다. 그때 한 고생 때문에 자신감 대신 겸손을 배웠다. 모두들 수술해야 한다고 권하기에 날짜를 잡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돌연 수술을 포기하였다. 의사 한 분이 “화장실에 엉금엉금 기어가기 전까지 수술하지 말라”며 권면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여서 별다른 운동을 하지 못했지만, 다만 꾸준히 걸어 다녔다. 지금도 매일 1만5000보에서 2만보씩 걸어 다니며 몸을 관리하니 해마다 돌아오는 농사철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이젠 허리 통증은 모두 극복하였다. 당장 끊어질 듯한 아픔조차 겪고 나니 매사에 끝은 있더라. 다시 농사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날마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은 과일 나무만이 아닌 듯하다. 사람 역시 얼마나 스스로 제 그늘을 만들고 사는가. 그 그늘 아래 욕망을 감추고, 치부도 숨기려고 하지만 결국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통증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구나. 가을에 좋은 열매를 보려면 개인이든, 교회든, 심지어 대통령의 엄중한 선택일지라도, 과감한 포기만큼 소중한 밑거름은 없다는 것이 초보 농부가 얻은 결론이다.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