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칙술럽의 수수께끼

입력 2014-04-05 02:16

미 항공우주국(NASA)은 1991년 인공위성을 이용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상공에서 지름이 무려 180㎞에 이르는 칙술럽(Chicxulub) 운석구를 발견했다. 약 10∼15㎞ 지름의 대형 운석이 초속 20㎞의 속도로 충돌해야 만들어지는 것으로 계산됐다. 바다 밑이고 크기가 너무 커서 발견되지 않았던 칙술럽의 확인으로 198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알바레즈 등이 주창한 운석충돌설이 널리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운석충돌설이란 지금으로부터 약 6550만년 전의 백악기 말에 일어난 생물의 대멸종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다. 당시 알바레즈는 아들인 월터가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1㎝ 두께의 진흙 샘플을 분석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샘플에는 지구 표면보다 100배나 많은 이리듐이 포함돼 있었던 것. 루이스는 그처럼 많은 양의 이리듐 함량을 갖기 위해선 지름 약 10㎞의 천체가 지구와 충돌해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지질학자인 월터는 아버지의 계산 결과를 백악기 말에 갑자기 멸종한 공룡과 연계시켰다. 거대한 운석과의 충돌로 인해 엄청난 양의 먼지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햇빛을 오랜 기간 차단함으로써 기온이 떨어져 공룡이 멸종했다는 설명이다.

백악기 말의 대멸종 사건은 공룡과 무게 25㎏이 넘는 육지동물은 물론 해양생물까지 65∼75%의 지구 생명체를 전멸시켰다. 그런데 운석충돌설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해양 플랑크톤을 비롯해 어룡, 수장룡 등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민물에 사는 종은 90%나 살아남았으며 깊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한 운석 충돌 후 햇빛 차폐로 인한 기온 저하도 수주일의 단기간에 끝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운석충돌설은 수수께끼에 빠졌다.

이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준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일본 연구팀이 대형 레이저 시스템인 겟코(Gekko·激光) XII를 이용해 최초로 우주속도에서의 충돌 증발실험에 성공한 것. 이 에 따르면 유카탄 반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유황 포함 암석이 운석과의 충돌로 삼산화황을 방출했으며, 이것이 수일 이내 전 지구적으로 퍼지면서 산성비를 내리게 해 치명적인 해양 산성화를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 산성화에 민감한 플랑크톤은 80% 이상이 멸종하고 육상 생물도 거의 멸종한 반면 민물과 해저에서는 멸종률이 낮았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해양은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산성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