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선심성 공약들 걸러내야

입력 2014-04-05 02:11


얼마 전부터 출근길 아파트 입구에서 명함을 돌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제는 파란 점퍼를 입은 이들이더니, 어제는 빨간 점퍼 차림의 다른 사람들이다. 오는 6월 4일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227개 시·군·구에서 실시되는 전국 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구의원과 시의원 예비후보들이다. 조만간 단체장을 꿈꾸는 이들과 선거운동원들도 이 대열에 합류할 게다.

6·4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은 명함을 돌리며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단체장 후보들을 중심으로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공약은 후보가 살아온 이력과 함께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소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선거 땐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도 당선되면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선거 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핀잔이 쏟아지는 이유다. 제대로 된 지역 일꾼을 뽑으려면 공약이 꼭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선심성 개발 공약들이다. 지역개발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심리에 편승한 공약들은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재원조달 방안과 지출계획 등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다가 무산되거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2008년 총선 당시 수도권 의원들이 너도나도 내걸었던 ‘뉴타운 개발 공약’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 48개 지역구 중 절반 이상이 뉴타운 공약을 앞세웠고 여기에 힘입어 상당수가 당선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했고 재산권 행사에 걸림돌이 되자 사업을 포기했거나 포기 절차를 밟고 있는 곳들이 허다하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대형 개발사업 관련 공약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공약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니지만 꼼꼼히 뜯어볼 필요는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이슈가 될 조짐이다. 총사업비 30조원 규모로 추진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초 최종 무산됐다. 지역 주민을 비롯해 사업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손실과 고통을 안겼음은 물론이다. 이 사업은 새누리당의 정몽준 예비후보가 최근 재추진 의사를 밝힌 후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박원순 시장이 최근 발표한 ‘영동권 종합발전계획’도 논란에 휩싸였다. 코엑스와 잠실 권역을 묶어 72만㎡에 달하는 부지를 마이스(기업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회) 산업 중심의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집중 개발하겠다는 이 계획은 강남 유권자의 표심을 노린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교통 관련 공약들이 많다. 새누리당의 원유철 예비후보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장을,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진표 예비후보는 그물망 급행 경기하나철도(G1X) 추진을 제시했지만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연합 김상곤 예비후보가 내놓은 ‘무상버스 공약’은 재원조달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내놓은 설익은 공약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예비후보들로서는 이런 평가가 서운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정말 꼭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 공약이라면 유권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확실한 비전과 재원조달 방안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 민선 5기 광역단체장들의 공약 이행률이 평균 47%(지난해 6월 기준)에 그쳤다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조사결과도 있다. 후보들은 선심성 공약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고 유권자들은 헛된 공약에 현혹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