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사막의 성찬식

입력 2014-04-05 02:13

이집트 사막 교회들은 성만찬에 참석할 수 없는 은둔 수도사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 사제가 근처에 사는 은둔 수도사를 매주 방문해 성만찬을 베풀었다. 어느 날 한 방문자가 수도사를 찾아와 그 사제를 험담했다. 며칠 후 사제가 성만찬을 베풀기 위해 찾았다. 그러자 수도사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사제의 방문을 꺼렸다. 사제는 그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그때 어디선가 한 음성이 들렸다. “인간들이 내 권한을 자기들 손으로 가져갔구나!”

성찬은 주님을 바라봐야

그와 동시에 수도사는 환상을 보았다. 황금 우물에 금줄이 달린 금 두레박이 걸려 있었다. 곧 한 한센병 환자가 와서 물을 긷기 시작했다. 그는 금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옆에 있는 통에 계속 부었다. 수도사는 목이 말랐지만 한센병 환자가 긷는 물을 마실 수 없었다. 그때 다시 음성이 들렸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누가 물을 긷든 무슨 상관이냐? 그는 단지 물을 길어 붓고 다시 긷고 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순간 그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즉시 사제를 불러 예전처럼 성만찬을 받았다.

위의 일화는 성찬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식을 집전하는 사람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성찬은 예식 집례자의 경건 정도와 관계없이 거룩하고 귀하다. 성직자의 경건 여부에 상관없이 성찬의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집례자에 대한 평가가 성찬을 받는 일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막 교회의 판단이었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사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보아야 한다.

이집트 사람인 마크도 은둔 수도사였다. 그 역시 비슷한 시험을 겪었다. 한 사제가 그에게 성찬을 늘 가져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방문자가 “그 사제에게서 죄의 냄새가 납니다. 앞으로 그가 오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크는 성령이 충만하여 그것이 마귀의 음성인 것을 알고 마귀를 쫓아낸 후에 돌려보냈다. 사제가 찾아왔을 때 마크는 기뻐하며 그를 영접했다.

그날 성찬식에서 마크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고 이렇게 간증했다. “사제가 성찬대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사제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제는 불기둥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경탄했습니다. 그때 ‘이 사람아, 어찌하여 이것을 보고 놀라느냐. 세상 임금도 귀족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자기 앞에 서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며 훌륭한 옷을 차려 입은 후에야 설 수 있게 하는데, 하늘의 영광 앞에 서서 거룩한 성찬을 다루는 종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시지 않겠느냐’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일화는 이전의 이야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찬 집례자를 하나님이 직접 성결케 하셔서 성찬식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로 준비시키심을 보여준다. 또 성찬이 베풀어지는 곳은 하늘의 천사와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가 있는 곳임을 알게 한다. 성찬식장은 주님과 우리들이 만나는 장소로 지정하신 신비로운 곳임을 알고 참여해야 한다.

성찬은 참여자를 변화시켜

성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일어난 변화를 기록한 일화도 있다. 원로 폴은 사람의 영혼 상태를 꿰뚫어 보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성찬식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로 들어가는 한 침울한 사람을 발견했다. 마귀들은 그 양편에 서서 코를 잡아끌고 갔다. 그의 수호천사는 슬퍼하면서 멀리 떨어져서 따라가고 있었다. 성찬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올 때 다시 보니 그 사람이 빛나는 얼굴을 하고, 마귀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그의 수호천사가 크게 기뻐하면서 곁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폴이 이 놀라운 변화를 궁금해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저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간음을 해왔습니다. 오늘 예배에서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6∼19)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가책으로 가득하여 탄식하면서 회개하고 주께서 저를 받아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앞으로 결코 악을 행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교회를 나왔습니다.” 성찬은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며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를 향한 주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는 기회였다.

요즘 일부 교회에서는 성찬을 상징이나 기억을 위한 행사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의 경우 많은 성도들이 성찬을 잘못 받아 병들고 죽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고전 11:29∼30). 단순한 상징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는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신비로운 예식이다(23∼25절). 그러므로 참여하기 전에 자기를 살피고 합당치 않는 것을 버리고 깨끗한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27∼28절). 주님 자신을 주시는 성찬에 초대받은 우리가 이 정도 기본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김진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