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45층 건물에 3000여명 거주…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
입력 2014-04-04 02:16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는 건설이 중단된 45층짜리 건물이 있다. 당초 카라카스를 상징하는 파이낸셜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1994년 건물주가 사망하면서 방치돼 있다. 2007년 무렵부터 불법 점유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우고 차베스 정권이 불법을 눈감아 준 덕에 지금은 3000여명이 거주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로 변했다. 최근에는 미국 드라마 ‘홈랜드’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사망한 건물주의 이름을 딴 ‘다비드 타워’는 시민들에게는 ‘범죄의 소굴’로 치부되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다. 2010년 남편, 5명의 아이와 함께 이곳 27층으로 이주해 온 다이스 루이즈는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다른 곳보다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다. 전에 살던 빈민가에서는 총소리가 난무하고 문 앞에 시체가 놓여있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밤에 문도 열어 놓고 산다고 한다. 처음엔 텐트 하나만 들고 왔지만 지금은 벽돌로 담도 쌓고, 가구도 들여 어엿한 아파트가 됐다.
사실 이곳 주민들도 범죄의 온상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18개월 동안 상황은 달라졌다. 복도는 깨끗하게 치워졌고, 벽에는 당번표도 붙어 있다. 매달 200볼리바르(약 3만원)를 방범 자치비용으로 지불한다. 주민 대표도 선출됐고, 내부 규율을 지키지 않는 주민들은 별도의 벌을 받는다. 건물 내에는 식료품 가게도 있고, 치과 병원과 미용실도 있다. 한 주민은 “힐튼 호텔까지 갈 필요가 있나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건물 곳곳에는 차베스 전 대통령의 향수가 배어 있다. 벽에는 ‘영원한 사령관’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고, 차베스의 사진도 걸려 있다. 다비드 타워에 살면서 이곳을 처음 세상에 알린 영화감독 니콜라스 알바레즈는 “우리도 똑같이 이 지구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 것은 바로 차베스였다”고 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