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유배 간 형의 초상화
입력 2014-04-04 02:31
단양에서 남한강을 따라 영월 쪽으로 올라가면 궁벽한 산골 영춘이 나온다. 1724년 문인화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1686∼1761)이 영춘으로 유배된 맏형을 찾아갔다. 53세인 조영복(1672∼1728)은 영조의 왕위 계승을 주장하다 반대파에게 몰려 귀양살이를 했다. 동생은 걱정이 가득한 형의 얼굴을 그렸다. 이마와 눈 밑의 주름살은 어지러운 심사를 보여준다. 눈을 보면 한양 소식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듯하다. 얼굴은 오른쪽으로 30도 틀었지만 몸체는 10도만 돌려서 앞을 향했고, 성긴 사방건에 커다란 도포를 입었다. 휘휘 돌려서 접어 앉은 도포가 꽉 차게 들어온다. 얼굴과 몸체가 바짝 이어져서 옷 위에 얼굴이 얹혀 있는 듯하다. 손잡이의 까만 때가 인상적인 부채는 허리띠에 달려 있다. 날씨가 더웠던 모양이다. 비단그림 오른쪽 상단에 영춘 배소에서 형을 그려 1년 후 채색까지 완성했다는 화가의 발문이 있다.
정선,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 문인화의 삼재(三齋)라 불리는 조영석은 형의 침울한 얼굴, 마디 굵은 양손, 허리띠의 부채와 같이 일상 소재를 잘 그려냈다. 초상화 전공 조선미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그려서 외모와 함께 사람의 정신까지 표현하는 멋이 있다”고 말한다. 이 초상화는, 그림 속 396㎝ 홍색 허리띠를 재현한 한국매듭연구회 김혜순 회장의 작품과 함께, 13일까지 경기도박물관의 ‘매듭, 과거와 현재를 잇다’ 특별전에서 공개된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