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 만들자
입력 2014-04-04 02:31
“정권 성격에 따라 부정되는 대북정책으론 통일대박 실현 가능성 높지 않아”
흔히 우리나라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고 말한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다. 중국과 키프로스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과 대만으로,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대만과 북키프로스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경우가 다르다.
20세기에 분단의 아픔을 겪은 국가들은 또 있다. 종교와 지리적 이유 등으로 세 나라로 갈라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논외로 하더라도 독일 오스트리아 베트남 예멘 등이 분단을 경험했다. 그리스계와 터키계의 민족 갈등으로 나뉜 키프로스를 제외하면 거의 예외 없이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분단의 가장 큰 원인이다.
1955년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76년 베트남, 90년 5월 예멘, 90년 10월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오스트리아 예멘 독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베트남은 무력으로 하나가 됐다. 통일이 대박임에 틀림없으나 전쟁으로 얻은 베트남식 통일은 결코 대박이 될 수 없다. 우리의 통일 모델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해답이 나온다.
영세 중립국으로 통일국가 지위를 얻은 오스트리아 모델은 통일한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으나 그 과정은 좌우 진영논리에 함몰돼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히틀러에 의해 강제 병합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영·불·소에 분할 점령된다. 하지만 좌우 진영이 함께 참여한 임시정부가 4강의 분할 점령에도 불구하고 단일 행정체제를 이룸으로써 통일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예멘의 통일은 자본주의(북)와 공산주의(남), 상극의 두 체제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남북 예멘은 국력의 비례에 따라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통일에 이르렀다. 국력이 센 북예멘이 남예멘에 정부 요직을 적지 않게 할애함으로써 79년 통합에 합의한 지 11년 만에 통일국가를 수립했다. 비록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을 겪었지만 예멘 통일 방식을 한반도에도 적용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이후 독일 통일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한 당시 서독이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독일식 흡수통일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통일을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 한 독일 모델을 우리에게 적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북은 남과 대등한 통일을 원한다. 이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자치정부’를 궁극의 목표로 하는 그들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녹아 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하는 과도기로 ‘남북연합’ 단계를 둔 것은 일정 부분 북의 주장을 수용해 통일에 한발 더 다가서려는 심모원려의 발현이다. 이런 염원이 밑바탕이 돼서 문민정부 때 김영삼·김일성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고, 다음 정부에서 김대중·김정일 간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동방정책을 빼고 독일 통일을 논하지 않는다. 사민당 정권에 이어 집권한 기민당 보수 정권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폐기하고 이전의 할슈타인 독트린 시대로 회귀했다면 통일이 늦어졌을지 모른다. 보수에서 진보로, 다시 보수로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을 추진했기에 통일을 앞당겼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도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정되는 대북정책으로는 아무리 통일대박을 외쳐봤자 구호로 끝날 공산이 크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10·4선언마저 부정되는 현실에서 북한에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믿어주기를 바라는 건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가 이달 중 출범한다. 여기에 진보 인사도 대거 참여시켜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대북정책을 이끌어내기를 소망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