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한국 중소기업론’ ‘한국 중소기업의 경제이론’ 펴낸 이경의 숙명여대 교수

입력 2014-04-04 02:21


50년 연구 총망라한 책 2권 중소기업 발전에 밀알됐으면

“중소기업 연구를 내 평생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50년간 해 왔는데, 별로 빛을 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이번에 마지막 같은 책 두 권을 내놓고 보니, 50년 간 짊어지고 있던 멍에를 내려놓은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지난 1일 서울 공덕동 연구실에서 만난 숙명여대 이경의(76) 명예교수. 최근 그는 ‘한국 중소기업의 경제이론’ ‘한국 중소기업론’(지식산업사)을 동시에 내놨다. 그의 얼굴은 그의 말대로 홀가분해 보였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현지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과 국내 중소기업간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긴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 관심은 지금까지 그 중요성에 비해 뒷전에 밀려있었다.

학계 사정도 비슷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는 대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실정이다. 1972년 공저 ‘중소기업경제론’(박영사)을 시작으로 82년 ‘한국경제와 중소기업’(까치), 96년 ‘중소기업의 이론과 정책’(지식산업사) 등 50년간 중소기업의 역사, 이론, 정책까지 아우른 10여권을 펴낸 이 교수의 책들이 귀중한 이유다.

그가 중소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4년 중소기업은행에 입사해 조사부에 배치되면서다. 당시 조사부는 중소기업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 관련 정책을 담은 연차보고서 작성 등 실질적인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했다. 흥미를 느낀 그는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변형윤 교수에게 “중소기업 문제가 평생 연구과제로 짊어지고 갈 만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변 교수는 ‘되지’라는 짤막한 답변을 내놨고, 그것이 중소기업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주경야독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77년부터 숙명여대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4년 은퇴한 뒤엔 공덕동에 연구실을 갖춰놓고 집필에 열중했다. 연구실 한쪽 책장엔 64년부터 발간된 실태조사 보고서와 연차보고서가 한 해도 빠짐없이 보관돼있다. 이를 토대로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중소기업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바로 ‘한국 중소기업론’이다.

그는 “중소기업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형성되는 모순이자 산업 구조상의 모순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문제로 접근할 땐 알프레드 마샬의 근대 경제학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고 보고, 정치경제학적인 분석 도구로 마르크스의 시각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관련 이론을 정리하게 됐고, 그래서 따로 펴낸 책이 ‘한국 중소기업의 경제 이론’이다.

그는 “역대 어느 정부도 중소기업에 관심을 두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 결국 이는 대기업과의 관계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중소기업정책은 메뉴는 좋은 데 먹을 게 없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자를 놓고 볼 때 정부가 중소기업 편에 서야 그나마 시장에서 균형이 이뤄지지만, 역대 정부들은 하나같이 대기업 편중 정책을 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식집약산업 시대로 진입하면서 중소기업만이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창조의 모체가 될 것”이라며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생산력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중소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