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중년’ 에 덧씌워진 억울한 오해
입력 2014-04-04 02:15
나이를 속이는 나이/패트리샤 코헨/돋을새김
‘꽃중년’, ‘미중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중년이지만 관리를 잘 해서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지닌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말이다.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꽃’이나 ‘미’자를 붙여 칭찬하는 말인데, 역설적으로 그런 접두어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중년’에는 아름답다는 의미가 없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과연 ‘중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부르는 말일까. 국립국어원의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이라는 정의와 함께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뉴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은 중년을 “청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기간이며 일반적으로 40세에서 60세에 이른다”고 정의한다. 웹스터 사전과 미국의 인구조사국은 중년을 45∼65세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45∼64세로 규정했다. 비영리단체 퓨리서치센터는 중년에 ‘경계세대’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준 뒤 50∼64세로 정의했다.
중년의 정의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미국 시카고대 리처드 A. 슈웨더 교수의 말처럼 중년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서로 다르게 형성된 ‘문화적 허구’라는 게 아닐까.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는 여기에서 착안해, 중년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파헤친다.
역사학자 하워드 쇼다코프는 노화에 대한 저서 ‘당신은 몇 살입니까’에서 “20세기 이전에는 중년을 인생의 특별한 기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40∼50대야말로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와 업적을 쌓은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18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삽화를 보자. 인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10년 단위로 묘사한 그림인데, 5층으로 된 계단의 정상에 50대가 서 있다. 그 옆으로 40대와 60대, 30대와 70대 늘어서있는 것을 보면, 50대를 인생의 절정기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 대체 언제 ‘중년’이 쇠퇴기이자 노화가 시작되는 시기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일까. 저자는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고 특히 1920년대 과학과 경영이 사회 담론을 주도하면서 중년에 대한 인식은 이전의 경륜과 지혜를 의미하던 것에서 육체적으로 밀리는 시기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공장에서는 재빠르고 힘이 넘치는 청년을 선호했다. 중년의 삶은 생산성과 발랄한 아름다움이라는 조건에 의해 편협하게 평가됐다. 이런 배경에서 중년은 쇠퇴기라는 의미가 점점 더 강해졌고, 이러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나이 먹는 걸 부정하려는 문화로 표출됐다. 조금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염색하고,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 안티에이징 크림을 바른다. 늙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자극한 건 TV광고와 다양한 미디어 매체였다.
저자는 중년에 겪는 각종 기력쇠퇴와 무력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상품들을 쏟아내는 업체들을 ‘중년 산업 복합체’로 명명한다. 노화방지를 위해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 산업 현장부터 섹스 산업 분야까지 다양하다. 그는 “중년의 의학은 전통적인 서양의술과 대체 요법, 미용과 건강산업 그리고 돌팔이가 함께 만나는 생물학적 교차로”라며 “과학이 이처럼 빈번히 인용되고 또 이처럼 무참하게 남용된 적은 없었다”고 꼬집는다.
더구나 2008년 미국 사회를 덮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중년이 손해볼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2009년 미국 국방부 인근의 한 병원에서 실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보톡스 주사를 시술해준 사례처럼,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가 은연중에 확산된 것이다. 중년에 덧씌워진 우울과 침체의 이미지는 강화되고, 중년 산업 복합체는 나날이 커지고 있으니 중년은 옴짝달싹 못하고 이렇게 암울한 인생의 한 시기로 굳어져 버리는 것일까.
저자는 지난 150년 동안 끊임없이 ‘중년의 개념’이 변모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2010년 NBC 유니버설 방송사는 ‘알파붐세대’라는 신조어와 함께 55∼64세 연령대에 속하면서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다양한 상품에 지출하는 최고의 소비자 집단을 소개했다.
저자는 이런 사례에서 중년의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읽어내려 한다. “중년은 미지의 열정들, 깊은 만족감, 새롭게 찾아낸 창의력을 불러낼 수도 있다. 지금, 우리의 빛나는 중년은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년’에 덧씌워진 이미지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저자의 결론은 중년을 위한 송가처럼 다가온다. 권혁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