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금감원 감사 결과] 관리는 소홀·평가는 멋대로·지적은 무시… 총체적 난국
입력 2014-04-03 02:27
금융감독원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주 업무인 금융사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는 엉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내부감사에서 지적된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이어졌다.
◇서민대출 관리 엉망에 민원 평가도 제멋대로=감사원은 지난해 3월 4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민금융 지원 및 감독 실태’ 감사를 벌였다. 이 감사를 통해 5개 부문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후 지난해 5월 3일부터 6월 28일까지의 ‘금융소비자 보호 및 감독 실태’ 감사에서는 11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서민금융 지원·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금감원의 가장 큰 두 줄기가 썩었다는 평을 받았다.
2일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서민금융의 대표적 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 지난해까지 새희망홀씨대출은 신용등급 5등급 이하에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이거나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인 사람만 신청이 가능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바람에 소득이 훨씬 높은 사람이 새희망홀씨대출을 받아갔다. 성실하게 새희망홀씨대출을 갚아나갈 경우 깎아주기로 한 금리 역시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
최수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강조된 ‘민원발생 평가’는 기준을 바꾸는 일까지 등장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2012년 금융회사 민원 평가를 하며 당초 계획에 따른 배점 기준표 작성 방법을 합리적 사유 없이 임의로 변경하는 일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금융사 민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며 금융사를 압박했다. 하지만 정작 금감원은 민원평가 기준을 임의로 운용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 원장은 2012년 당시 수석부원장이었다.
2009년에 도입한 옴부즈맨 제도는 유명무실했다. 옴부즈맨은 금감원의 검사·감독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만 사안을 제삼자가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 한 건도 제보하지 않는 등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감사원 지적은 무시=최근 신용카드 결제 금전 등록기(POS·Point Of Sales) 단말기에서 고객정보 1200만건이 유출된 배경에는 감사원의 지적을 무시한 금감원이 있었다. 감사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 감사를 통해 “POS 단말기 보안강화 방안 추진이 부적정하다”고 경고했다. 감사원은 이어 “POS 단말기 보안조치 등을 원활히 해 이를 통한 정보유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POS 단말기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4일 POS 단말기를 통해 고객 신용카드 결제정보 1200여만건을 빼낸 최모(3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때 유출된 고객정보는 카드번호 16자리와 결제금액, 결제날짜, 카드회사, 이름, 휴대전화번호, 주소 등이었다.
파생상품 거래를 위한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에 대해서도 2011년에 이어 또다시 지적을 받았다. 2011년 감사원은 증권사들이 선물거래 투자자의 위탁증거금에 대한 이자(이용료) 약 400억원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을 적발했다. 감사원은 이후 금감원에 관련 비리 사실을 모두 통보하고 조치를 요구했다. 금감원은 이런 일을 겪었지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에서도 ‘파생상품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를 과소 지급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감독에 철저히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내부 통제 엉망, 누가 누굴 감독해=지난해 9차례의 종합감사와 3차례의 부문감사로 총 12차례 진행된 금감원 내부감사에서는 매번 내부통제 불철저 문제가 나왔다. 일종의 고질병이 된 것이다. ‘눈먼 돈’을 상시 감시하는 금감원 내부의 살림에 외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금감원 감사실은 금융회사 검사 과정에서 확인서 제출을 요구할 때 ‘조력 받을 권리 및 이의신청 절차에 대한 유의사항’ 안내가 부실했다고 지난해에만 총 3차례 지적했다. 피검기관의 권리를 구두로만 설명하고, 안내문에 서명을 받지 않아 절차상 문제를 일으켰다.
국민적 이슈인 개인정보 보안 실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감사실은 지난해 6월 3차 종합감사에서 “민원 처리 시 개인정보 제공 동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원인에게서 유선상으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구할 때 동의 여부를 녹취해 증빙 자료로 보관토록 하라는 지적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후 지난해 7월 2차 부문감사에서는 “개인정보 처리 실태 및 관행의 정기적 조사·개선 절차를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국거래소 등 경제부처 산하 공공기관들이 방만 경영의 표상처럼 지적받던 해외출장 관련 잡음은 금감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사실이 “해외출장 시 출장보고서 및 관련 자료를 모든 직원이 업무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해외출장 업무 관리를 강화하라”고 권고할 정도다. 일부 해외출장에 대해서는 지출원인행위 결의서나 출장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그 밖에도 세부적으로는 각종 여비교통비와 소모품, 차량관리 업무에서 요금 산출에 필요한 세부 내역이 빠지거나 유류사용 내역이 관리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진삼열 이경원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