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란 이름의 질병] “처음 1년 술독에 빠져 지내… 비슷한 처지 사람들 통해 마음 열어”

입력 2014-04-03 03:16


■ 정용채 ‘자작나무’ 회원

“4년 전 아들이 떠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진로문제로 방황하며 우울증을 겪고 힘들어했다는 걸.”

서울 구로동 카페에서 자살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의 회원 정용채(56)씨를 만난 건 지난 1월이었다. 감기 기운으로 병원에 다녀왔다는 정씨는 차분하지만 밝은 모습이었다. 2010년 대학 4학년이던 아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평온을 되찾기까지 그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처음 1년은 술독에 빠져 지내며 줄담배를 피웠다. 아내는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고통이란 단어는 부부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너무 가벼웠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교통사고로 아들이 떠났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아들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씨는 “아들을 따라나서자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런다고 아들이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1년쯤 지나자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씨는 “아직도 손자가 미국에 유학 간 줄 아는 고향의 어머니, 더 큰 상처를 받았을 아내와 딸을 지켜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고 털어놨다. 정씨 가족은 서로 손가락을 걸고 “우린 그러지 말자”고 약속했다.

아들을 이해해보려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강의를 다녔다. 삶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철학서적을 읽고 성경부터 불경까지 탐독했다. 1년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도 했다. 정씨를 거친 환자들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고 더러는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정씨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 해본 셈”이라며 웃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자작나무 모임에 나갔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정씨는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상처를 품은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는 나를 발견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한두 해 먼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점차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고 있는 모습은 큰 위안이 됐다. 그는 “술을 끊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절주를 위해 3개월간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점점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어나가면서 자작나무의 리더가 됐다. 혹시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지난해 10월부터 ‘토닥토닥’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자작나무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다른 유가족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자살로 가족을 잃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새로운 분들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쉬운 위로는 없다는 걸 정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사고 직후에는 누가 어떤 위로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는 “우리가 공유하는 아픔은 얼굴에 어려 서로 알아볼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던 유족들이 마음을 고쳐먹은 게 얼굴에 드러나면 내 일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한 시간 끝에 정씨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죽음도 변화나 이별 같은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되면 최소한 가슴에 박힌 말뚝 정도는 빠집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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