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찬 계모’ 역 손여은 “세결여 대본 보고 또 봤죠 그 안에 인생 있더라고요”

입력 2014-04-03 02:33


김수현(본명 김순옥·71) 작가의 꼿꼿한 체면이 자칫 위험할 뻔 했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는 극 초반 예상 밖 부진을 보이며 시청률 10%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작가 특유의 뒷심이 발휘됐다. 얼굴도 이름도 낯선 배우 손여은(본명 한나연·31)을 통해서였다.

손여은이 연기한 한채린은 참한 재벌 외동딸. 시어머니(김용림)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였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급변해 의붓딸 슬기(김지영)를 때리고 시어른에게 대들면서 사건의 중심에 섰다. ‘의외의 반전’ 채린에게 대중의 이목이 쏠렸고, 시청률 역시 반등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공원로 한 카페에서 만난 손여은은 “초반엔 인물 설명이 주로 다뤄져 전개가 느렸지만, 채린이 태원(송창의)과 결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일들이 벌어졌다. 이후 시청률이 오른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한 작품 안에서 ‘단아한 숙녀’와 ‘매몰찬 계모’를 넘나들며 극단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사건이 일어나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대본에서 답을 찾았다”며 작가에게 공을 돌렸다.

“촬영 끝날 때까지 저는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작가님께선 항상 대본으로 답을 주셨죠. 따로 자세히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그 안에 답이 있더라고요. 작가님 대본은 그냥 ‘인생’인 것 같아요.”

시청자들은 그를 ‘좀 늦게 데뷔한 신인이려니’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손여은은 데뷔 10년차 배우. 고향은 부산,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서울에 놀러왔다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 돼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SBS ‘돌아온 싱글’(2005)로 정식 데뷔했고, MBC ‘뉴하트’(2007), KBS ‘각시탈’(2012), MBC ‘구암 허준’(2013) 등에 출연했다. 요즘과 같은 뜨거운 관심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는 “소수지만 제 연기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힘을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실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세결여’ 출연은 이 같은 노력의 결과였다. 전작인 ‘구암 허준’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김 작가가 손여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것. 그는 “그래서 ‘세결여’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런 큰 반응이 처음엔 굉장히 낯설었어요. 주위에선 인기를 즐겨도 된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더 마음을 다잡고 책임감 있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번에 워낙 훌륭한 작품을 만나서…. 차기작 결정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설레고 기대도 많이 되네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