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방황하는 칼날’ 이성민 “애틋한 부성애… 복수극 아닌 심리극”
입력 2014-04-02 19:26 수정 2014-04-03 03:03
주인공 상현(정재영)은 오래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여중생 딸 수진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진이 동네 버려진 목욕탕에서 10대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된다.
또 다른 주인공 억관(이성민)은 서울 강동경찰서에 근무하는 형사다. 그는 수진의 죽음을 상현에게 알리고 그를 위로한다. 문제는 상현이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이들을 상대로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는 점. 상현을 위로하던 억관은 범죄자가 돼버린 상현을 추적하게 되는데….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감독 이정호)의 이야기다. 영화는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핵심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10대의 죗값과 관련된 물음이다. 현행법에서 미성년자는 성폭행이나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성인에 비해 형(刑)이 가볍다.
일본의 대표적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화창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처럼 보이는 게 사실. 하지만 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46)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부모들이라면 꼭 한 번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을 다룬 작품이 처음은 아니겠죠. 하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복수가 아닌 아버지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에요. 비슷한 소재의 기존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죠. 자녀가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상영 내내 마음이 아프고 힘들 거예요. 하지만 꼭 봤으면 좋겠어요. 당신들의 자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이성민이 맡은 억관이라는 인물은 다층적인 캐릭터다. 억관은 전력을 다해 상현을 쫓다가도 검거의 기회를 잡으면 망설인다. 상현에게 짙은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다. 억관은 범죄를 저지른 10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법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 가령 억관은 과거 친구를 살해한 한 청소년이 ‘가볍게’ 죗값을 치른 뒤 농구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렇게 말한다. “게임팩 때문에 친구를 죽이고도 저렇게 웃으면서 농구를 하고 있다….”
“연기를 하며 힘든 점이 많았어요.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심리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잖아요. 만약 제가 억관이라면 상현을 어떻게든 검거했을 거예요. 그의 폭주를 막는 게 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물론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면 상현은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가게 되겠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이성민의 첫 영화 주연작이기도 하다. 그는 “포스터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걸 보고 정말 민망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주인공인 배우 정재영에 대해선 격찬을 쏟아냈다. 이성민은 “정재영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는 데 꼼수를 부리지 않더라고요. 연기에 임하는 태도, 돌직구 같은 연기력…. 저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지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함께 영화를 찍는 내내 든든하더라고요.”
경북 봉화 출신인 이성민은 군대를 갔다 온 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대구의 한 극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40편 넘는 드라마와 영화에 얼굴을 내비쳤지만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MBC)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골든타임’에서 그는 강한 카리스마의 ‘열혈 의사’ 최인혁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내며 스타로 발돋움했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절대 연기자의 길을 선택하진 않을 거예요(웃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직한 일, 답이 명쾌한 직업을 갖고 싶어요. 자동차 수리를 한다든가, 농사를 짓는다든가…. 저도 이제 나이가 드니 책임감이 많이 생겨요. 대중이, 후배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