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영옥]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배운다
입력 2014-04-03 02:35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취임 후 처음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언론은 아버지 대통령에 이어 딸 대통령이 50년 만에 다시 독일 벤치마킹에 나선 것이라며 드라마틱한 해석을 쏟아냈다.
독일 특유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 모델과 성공적인 통일 전략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모델로 회자됐다. “독일에도 통일은 정말 행운이자 대박이었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위트 있는 표현,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3대 대북 제안을 담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등은 통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흥행 요소이기도 했다.
통일대박론에 묻혀 주목을 덜 끌었으나 드레스덴 선언이 발표된 드레스덴에선 의미 있는 장소의 방문이 이뤄졌다. 바로 성모교회다. 18세기 초 건축된 이 교회는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또 다른 것으로, 독일의 원칙적 문화재복원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문화재 복원에만 639년 걸려
성모교회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시와 함께 초토화되었고, 옛 동독시절 방치되었다가 독일이 통일된 이후인 2005년 복원됐다. 우리로 치면 화마로 무너져 내렸다가 복구된 숭례문 같은 것이다. 성모교회는 철저한 문서고증과 3D 등 현대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통해 복원됐다. 공습으로 파괴된 건축물의 벽돌 잔해들도 오롯이 사용됐다. 지난해 가을 독일 문화 취재차 이곳을 찾았다. 크림색 대리석으로 바로크 양식의 당당함을 한껏 살려낸 성모교회의 북쪽 외벽 한 귀퉁이엔 옛 석재를 활용한 검은 벽이 흉터처럼 선명해 인상적이었다.
더욱 눈길을 끈 건 공사기간이다. 성모교회의 복원은 1994년 시작돼 2005년 끝났다. 11년이 걸렸으니 단순계산으로 해도 숭례문 복구 기간의 배가 걸렸다. 이런 건 약과라며 독일로 유학해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한 한 교수는 흥미 있는 사례를 전했다.
작센안할트 주 할버슈타트에 있는 부르하르디 교회의 파이프오르간 복원 얘기다. 1361년에 설치된, 현대 파이프오르간의 시원으로 불리는 이 오르간은 17세기 30년전쟁 때 파괴됐다. 2000년 이 오르간 복원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프로젝트 완료 시점이 2640년이다. 그것이 설치돼 복원 논의를 시작하기까지의 기간인 639년만큼의 시간 동안 2001년부터 복원키로 한 것이다. 수천 개의 파이프를 악보 기록에 의지해 또박또박 600여년에 걸쳐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상상 초월의 일이다.
미국의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는 프로젝트를 기념해 ‘ASLSP(As Slow as Possible)’라는 오르간 곡을 작곡했다. ‘가능한 한 천천히’라는 뜻이니, 문화재 복원조차 산업화 시대의 ‘빨리빨리 문화’가 점령한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복구된 지 수개월 만에 기둥이 갈라지고 단청이 떨어져 나가는 등의 치부가 드러난 숭례문 부실 복원은 빨리빨리 문화가 낳은 폐
해에 다름 아니었다.
반구대암각화 훼손하면 안돼
그래서 아직 진행형인 울산 울주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 보존 논의가 우려스럽다. 문화재청과 울산시 간의 갈등을 봉합해 나온 카이네틱 댐(가변형 물막이시설) 건설안은 총리실이 주도한 정치적 타협의 냄새가 짙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월 이 시설이 영구적인 게 아니라 원상회복 가능한 임시적인 성격임을 입증하라며 울산시가 낸 계획안 심의를 보류했다. 암각화는 신석기 유적일 뿐 아니라 주변에선 백악기 시대 공룡 발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카이네틱 댐이 세계적으로 드문 이 유적을 훼손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이 문제를 재논의할 이달 하순의 문화재위원회 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