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공로에서 은혜로

입력 2014-04-03 02:06


누가복음 15장 1∼7절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님의 비유 세 가지(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누가 99마리의 양을 들에다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단 말입니까. 찾은 다음에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했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또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었는데 등불을 밝혀가며 쓸면서 진종일 동전을 찾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름 값만 해도 비쌀 텐데 말이죠.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요구한 작은 아들을 보세요. 가출해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그 아들을 아버지는 환영하고, 제일 좋은 옷, 반지, 신발, 그리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죄인들과 음식까지 같이 먹다니 세상의 세계관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세계관의 차이 때문입니다. 세상은 양과 가치, 질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적은 것과 많은 것, 낮은 것과 높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별이 엄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적은 것과 낮은 것, 죄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우리는 공로의 원리를 가지고 삽니다. 그것은 권선징악, 시시비비의 원리이기도 하고, 본능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은혜의 원리를 중요시합니다. 세상의 공로의 원리를 은혜의 원리로 끌어올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공로를 의지하는 것은 불타는 곳에서 지푸라기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에서 공로의 원리가 통한다면 각박해집니다. 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는지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옳은 것 이상의 무엇, 바로 은혜가 필요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만 있으면 됩니다. 사실상 하나님도 필요 없습니다. 율법주의가 나쁜 것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위선 때문입니다. 공로주의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시시비비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교만과 경쟁심 그리고 남을 정죄하는 생활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는데, 여기서 ‘더 나은 의’가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는 절대적인 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주어지는 절대적인 의만이 인간을 구원합니다. 모든 종교의 타락은 공덕주의에서 출발합니다. 공덕주의란 인간이 어떤 종교적 의무를 잘 이행하므로 구원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금욕, 금식, 구제, 선행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도 하나님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란 우리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달려 있습니다.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허락됐습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기채 목사 (서울 중앙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