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 앞 외출조차 힘겨웠던 이들… 높기만 하던 병원 문턱을 뛰어넘다
입력 2014-04-02 03:08
중증장애인 20명, 골든써클재단 ‘무료 검진’ 선물받던 날
10㎝.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높이지만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윤두선(53)씨에게는 병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커다란 장벽이다. 아파도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가지 못했던 윤씨는 1일 오전 자그마치 1년 만에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윤씨에게 ‘무료 암 검진’을 선물했다.
봄꽃이 만개한 이날 서울대병원 삼성암연구소 2층 회의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골든써클재단의 MCC(Medical Compassion Care) 사업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MCC는 비장애인이 서울대병원에서 ‘스마트 암 검사’를 받으면 재단이 그 수만큼 중증장애인들에게 무료 검진을 지원하는 ‘1+1 의료 기부’다. 비장애인이 재단(02-785-8105)에 기부 참여 의사를 밝히면 재단에서 중증장애인을 섭외해 암 검사를 무료로 진행한다.
들뜬 마음으로 전국 곳곳에서 병원을 찾아온 중증장애인 20명이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아 원형 탁자를 따라 둥글게 줄을 섰다. 검진 차례를 기다리며 곳곳에서 왁자지껄 수다가 벌어졌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외출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병원 방문도 봄나들이다.
스마트 암 검사는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간암 폐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6대 암의 발병 여부와 혈당, 동맥경화, 신장, 간 기능 등 21개 항목을 확인할 수 있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최적의 검사 기법이다. 평균 정확도는 85∼95%로 일반 혈액검사보다 높다. 비용도 33만원으로 일반 종합검진보다 저렴하고 보름 정도면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이 검사를 개발한 서울대 의대 병리과 김철우 교수는 “복잡한 종합검진을 받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검사 기법”이라며 “재단과 협의해 중증장애인뿐 아니라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에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실상 의료 접근권이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힘들게 병원에 가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검사 장비가 없어 엑스레이조차 못 찍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신을 휠체어에 의지해 산다. 왼쪽 손목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윤씨는 “10㎝ 문턱을 넘기도 힘든 중증장애인은 같은 병에 걸려도 비장애인보다 수만 배 고통스럽다”며 “이렇게 미리 검진 받고 병을 예방할 수 있으면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1+1 의료 기부’에 동참한 비장애인 박종형(50)씨는 충북 속리산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3년째 중증장애인 이동봉사를 해온 큰아들(17)에게 이런 기부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여했다”면서 “암 검진을 받은 것도 든든한데, 누군가가 내 덕에 소중한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