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란 이름의 질병-(2부) 자살 치료 울타리를 넓혀라] 1. 울타리 밖의 풍경

입력 2014-04-02 02:30


흉기 자해 ‘일촉즉발’… 3시간 달래고 설득 응급입원

“기사님, 충무로요. 빨리 가주세요!”

그나마 가까운 편이라 다행이었다. 1월 16일 오후 7시 서울시자살예방센터(논현동) 당직자 최모씨와 권모씨는 택시 안에서 자살 시도자 이선영(가명·여)씨의 특성을 분석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 최근 상태 호전, 오른쪽 다리 장애, 반복적인 성추행 피해 주장….

특별히 공격성은 없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상담 전화를 걸어온 그는 흉기를 들고 구체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씨는 “오늘은 너무 위험해 보여 전화상담을 하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며 “출동한 경찰 말로는 서랍에 흉기를 숨겼다던데 아직 찾지 못했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살예방센터 상담원 동행취재. 시작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

딱지가 막 내려앉은 상처

높이 솟은 빌딩 아래 골목길 구석에 이씨의 작은 단칸방이 있었다. 싱크대를 지나 방문을 열자 씻지 않아 털이 눌어붙은 강아지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남대문경찰서 중림파출소 신흥수 경위와 이형주 경위가 시린 발을 구르며 이씨를 설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방은 바깥만큼 추웠다. 구석 전기요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쓴 이씨가 보였다. 낡은 서랍장 위 먼지 쌓인 성모마리아상 옆엔 혈압약, 우울증약, 영양제 등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최씨는 “선영씨가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 왔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눈을 질끈 감고 울먹이던 이씨가 입을 열었다. “오빠가 정신병원에 보내버린다고 전화했어요.” 왼손에 상처가 선명했다. 일주일 전 칼로 그었다고 했다. 손등과 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깊게 파인 상처는 이제 막 딱지가 앉았다. 최씨는 혹시 다른 곳에도 흉터가 있는지 조심스레 살폈다.

경찰은 “작은 선영이는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강아지를 바라봤다. 영문을 모르는 강아지가 동그란 눈을 멀뚱멀뚱 뜨더니 이씨 품으로 파고들었다.

최씨가 “오늘 왜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묻자 이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요양병원에 중풍으로 입원해 있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데 다들 ‘죽어버리라’고 한다”며 힘겹게 말했다. 일주일 전부터 환청을 들었다는 이씨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분이 너무 나쁘다고 했다.

“2014년 12월 16일”

이씨는 숨을 가쁘게 쉬다가 서랍장에서 검정 비닐봉투를 꺼냈다. 4등분으로 접힌 서류가 들어 있는데 경찰 사건 기록이다. 이씨는 “어떤 할아버지가 가슴과 다리를 만지고 옷도 벗겨 강제로 관계하려 했다”며 울먹였다. 경찰은 서류를 보더니 “혐의 없다고 나온 모양인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씨는 권씨와 눈빛을 주고받곤 오늘이 며칠이냐고 이씨에게 물었다. “2014년 12월 16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자신이 식사를 했는지,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를 만큼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씨는 “죽으면 엄마한테 갈 수 있으니 자살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최씨는 “선영씨는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하지만 자살 이후 상황은 아무도 몰라요”라고 타일렀다. 이씨는 다시 “자살하면 편안할 것 같아요. 아버지 편찮으신 게 힘들어요. 도움도 못 드리고”라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살기 위해 버텨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최씨와 권씨가 번갈아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돌봐줄 가족이 없진 않았다. 오빠와 언니, 여동생이 있지만 연락이 거의 없다고 했다. 최씨가 이씨의 손을 꼭 잡더니 “곁에 보살필 사람이 없어 더 걱정된다. 괜찮아질 때까지만 안전한 곳에서 치료받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이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최씨가 “제가 말하는 곳이 병원이에요”라고 하자 이씨는 손을 빼고 태도를 바꿨다. 그는 “병원엔 안 간다”며 소리를 지르더니 서랍장 맨 아래 칸을 열었다. 날이 15㎝는 돼 보이는 과도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경위가 칼을 빼앗으려 했지만 이씨가 몸으로 막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흥분한 이씨는 “가! 다 가버려요! 혼자 있고 싶어요!”라며 악을 썼다.

“칼, 칼, 칼…”

오후 9시, 센터 직원들은 응급입원을 결정했다. 정신보건법에 따라 의사 면담을 거쳐 72시간 동안 강제로 구인하는 조치다. 권씨는 “조현병 환자는 약물을 통한 증상관리가 급선무라 응급입원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터 직원들이 응급입원을 위한 이송 차량을 부르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에 이 경위는 흉기를 빼앗으려 갖은 애를 썼다. 이씨가 관내 요주의 인물이라 경찰들이 자주 순찰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구면’이다. 신 경위가 “소양강처녀 불러줄까?” 하며 이씨를 달래자 이불 속에서 “불러 봐요”라는 대꾸가 들렸다. “해 저문∼ 소∼양강에∼” 두 소절쯤 부르니 이씨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신 경위는 율동까지 하면서 이씨의 주의를 끌었고 이때를 노려 이 경위가 서랍장 속 칼을 뺏으려 달려들었다. 센터 직원들과 기자까지 합세해 이씨를 힘으로 누르는 사이 간신히 신 경위가 칼 두 자루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자루가 낡은 과도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괴성을 지른 이씨는 다시 가방을 뒤져 작은 면도칼을 꺼내들었다. “칼, 칼! 아저씨 여기 칼 또 있어요!” 권씨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 경위가 이씨 손목을 잡고 억지로 주먹을 펴 칼을 압수했다. 센터 직원과 경찰들은 옷장, 서랍장, 선반 등을 모두 뒤져 흉기가 될 만한 송곳, 핀셋, 가위 등을 전부 수거했다. 이씨는 이번엔 약봉투를 한꺼번에 들고 입에 털어 넣으려 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이씨를 제지하고 약품과 옷장 속 스카프까지 ‘도구’가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거둬들였다.

임대아파트

울다 지친 이씨가 조심스레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보여줬다. 20일이 기초생활수급비 들어오는 날이라며 이씨가 보여준 통장엔 300만원 가까이 모여 있었다. 그는 이 돈으로 서울 만리동에 임대아파트를 살 거라고 했다. 장애인 교통카드와 묵주 팔찌도 꺼내 보였다. 삶에 대한 의지가 남아 있음을 드러내는 몸짓이다. 최씨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왜 죽으려 하느냐”며 달랬다.

오후 9시40분 이씨를 병원으로 데려갈 구급차가 도착했다. 갑자기 밥을 먹겠다며 버너에 불을 켜던 이씨는 상황을 눈치 채고 “전부 가! 나가!” 하며 쓰레기통과 집기를 문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달래고 달랜 끝에 오후 10시가 돼서야 이씨가 제 발로 방문을 나섰다.

24시간 정신응급센터를 운영하는 서울시립은평병원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경찰 출동 3시간 만인 오후 10시30분이었다. 병원에 가서도 이씨는 “무섭고 두렵다. 입원하지 않겠다”며 떼를 쓰고 울었다. 이씨를 알아본 간호사는 “오늘 새벽 4시30분쯤 입원하러 자기발로 왔다가 30분 만에 나간 분”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혀 그토록 싫어하던 병원에 스스로 찾아왔던 거였다. 당직 의사는 입원해야 한다고 이씨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구급대원들이 철수하고 경찰과 센터 직원들은 접수를 위해 원무과로 향했다. 등 뒤로 닫히는 문 너머에서 “입원 싫어, 병원 싫어!” 소리치는 이씨 목소리가 울렸다. 응급입원 서류는 정신과 진단이 확실한 경우 통상 동행한 경찰이 작성한다. 이씨의 입원 사유는 ‘자해’로 분류됐다.

마음의 저울질

“오늘따라 밤이 기네요.” 병원 앞에서 경찰과 헤어진 뒤 택시를 탄 최씨가 이렇게 말하며 좌석에 몸을 기댔다. 최씨는 “이씨가 술을 마셨거나 남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자살 시도자에게 뺨을 맞고 나가떨어져 안경이 부서진 적도 있다”며 웃었다.

권씨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저울질을 한다”고 했다.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혼자 갈등하다 센터로 전화를 건다. 수화기를 든 그들은 “자살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살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권씨는 “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며 얘기를 끌어가야 한다”며 “아까 최 선생님이 임대아파트 얘기에 관심을 보인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다. 센터로 복귀한 시간은 오후 11시40분. 권씨가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전화벨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이씨처럼 병원을 꺼리는 잠재적 ‘자살 고위험군’을 위해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2005년부터 자살 및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인 ‘마음이음 상담전화’(1577-0199)를 운영한다. 첫해 3653통이 걸려온 뒤 매년 큰 폭으로 늘어 지난해 2만7169통이 됐다. 응급출동은 2010년 103건에서 지난해 236건으로 늘었다. 2012년 서울시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3.8명(2391명)으로 2011년 26.9명(2722명)보다 11.5% 감소했다. 6년 만에 처음이다.

■설문 참여 전문가 명단

민성호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미라 서울 서부 위(Wee)센터장, 박은진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중앙자살예방센터장),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이은진 노원정신보건센터 부센터장,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최삼욱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 홍기정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이상 11명, 가나다 순)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