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새 목표는 성장·고용”… 뚜껑 여니 비둘기파
입력 2014-04-02 03:58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는 4년 전 취임사에서 ‘글로벌 경제 환경에 걸맞은 중앙은행의 위상정립’을 강조했다. 실제 그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의장 역할을 무난히 수행, 한은의 글로벌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취임 당시 그가 성장을 중시하는 ‘비둘기파’인지,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인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성향이 익히 알려져서다. 다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이명박정부 성장 정책을 지나치게 추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후 금리와 환율 등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선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꼬리표처럼 김 전 총재를 따라다녔다.
반면 이주열 신임 한은 총재는 지명 이후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한은 부총재 시절 금리 인상이나 인하 어느 한쪽을 강조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 때문에 중도파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물가 안정을 우선순위로 하는 한은에서 오래 근무한 점을 들어 ‘굳이 나누자면 매파’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았다. 이 총재 지명 직후 시장에선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지며 채권금리가 급등하기도 했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1일 취임한 이 총재는 일성으로 ‘물가 안정과 성장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요구임을 내세우면서 “경제구조와 대외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은의 역할과 책무가 재정립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는 한은의 정책 목표로 규정된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외에 성장이나 고용 등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책 목표를 추가하겠다는 것으로, 이로써 그가 매파라는 평가는 당분간 힘을 잃게 됐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은 “물가뿐 아니라 경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통화정책을 펴는 글로벌 추세에 발맞추겠다는 것으로 향후 금융 안정을 위해 한은이 운신의 폭을 넓히고 통화정책도 경기 상황 변화에 선제 대응하는 등 적극성을 띨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총재가 “한은이 국가 정책기관”이라고 정의하면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따로 언급하지 않은 점을 들어 박근혜정부와의 정책공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경기 회복세가 안정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대목을 들어 물가를 잡기 위해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 안정 차원에서는 정책 수단을 확충하겠다는 것은 한은이 금융감독 권한 확대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수장이 최근 바뀐 미국에서도 중앙은행 수장의 성향은 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31일(현지시간) 시카고의 미 연방예금보험공사 후원으로 열린 회의에서 “고용시장의 부진은 실업과 싸우기 위해 연준의 전례 없는 긴급 지원 조치가 ‘상당기간(for some time)’ 필요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밝혔다.
시장은 연준이 올해 10월쯤 양적완화(QE)를 종료하더라도, 초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해 경제 회생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시장 전문기관인 마켓워치는 “옐런 의장의 이날 발언은 나는 매파가 아닌 비둘기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옐런 의장은 지난달 조기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해 시장에선 “뚜껑을 여니 옐런이 비둘기파가 아니다”란 분석까지 제기됐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