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다운 에이징’… 나이 마케팅 비밀
입력 2014-04-02 03:16
“30·40대 잡으려면 20대에 인기있다고 얘기해라”
직장인 김주현(33·여)씨는 1일 친구와 함께 명동의 화장품 로드숍 매장을 찾았다. 1년 전 해당 매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김씨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이 매장이 20대를 타깃으로 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자신과 비슷한 연령의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자신감을 찾았다. 김씨는 “젊은 감각을 따라잡으려고 일부러 20대를 위한 화장품이나 의류 브랜드 매장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패션과 화장품을 비롯해 각 부문 유통업체들이 자신의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다운 에이징(down-aging)’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패션 업체 관계자는 “20대를 타깃으로 제품을 내놓으면 30, 40대도 많이 찾아온다”면서 “주요 소비층인 30, 40대를 잡기 위해 아예 20대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대들을 위한 백화점 편집숍엔 40, 50대 손님이 주요 고객이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마리 스토즈는 20대 초반을 공략한 동대문 패션 브랜드이지만 전체 고객 중 40대 비중이 30%에 이른다.
다운 에이징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마케팅 방식도 달라졌다. 애경이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에이지 투웨니스(AGE 20 TWENTIES)는 철저히 나이 마케팅으로 기획, 성공을 거둔 경우다. 이 브랜드는 이름만 20대를 의미할 뿐 실제 타깃 고객은 30, 40대다. 모델도 중년배우 견미리씨를 기용했다. 덕분에 ‘동안(童顔) 메이크업의 종결자’로 불리며 론칭 5개월 만에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DKNY는 지난주 서울 광진구 워커힐로 W호텔에서 열린 25주년 기념 봄·여름(S/S) 패션쇼에서 20대를 겨냥한 젊은 옷들을 선보였다. 국내 DKNY 소비자 중 50%는 30대다. DKNY가 국내에 소개됐을 때 20대였던 고객들은 이제 30대가 됐다. 40대 고객도 15%였던 것이 20%까지 늘었다. DKNY를 유통하는 SK네트웍스 관계자는 “DKNY 옷이 젊어진 것은 20대 소비자를 영입하는 동시에 기존 30, 40대 고객의 더 젊어 보이려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홈앤쇼핑의 패션 프로그램 ‘스타일에비뉴2’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소화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소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히트한 제품 중 하나가 ‘아이지엔 컬러매직 제깅스’다. 이 제품은 당초 20, 30대 여성을 겨냥한 스키니진 형태의 옷이었지만 방송이 나간 뒤 40, 50대 구매자가 몰리는 바람에 매진됐다.
반면 롯데백화점이 건강보조식품과 의료용품, 패션용품을 모아 2011년 본점에 문을 연 ‘실버 기프트 편집숍’은 판매 저조로 결국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대놓고 자신의 나이를 공개하는 ‘실버 매장’을 누가 찾겠느냐”며 “다운 에이징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