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개발도상국까지 확산… “노동 인력이 없다” 경제 직격탄

입력 2014-04-02 02:31


출산율 급락… 태국의 현실

태국 동부의 쌀 생산지인 반탐타켐(Baan Tam Ta Kem). 춤링 판린(54)씨는 쌀 경작지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예전 같으면 수확기에 젊은이들이 많이 동원됐으나 지금은 그럴 만한 사람이 없는 것.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임금을 찾아 방콕 인근으로 이주하고 마을에는 나이든 사람만 남아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놀거나 복권을 산다”며 “대도시로 간 젊은 가족이 보내온 돈만을 기다린다”고 푸념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일본이나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와 선진국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높은 출산율을 바탕으로 부모를 모시는 전통이 있는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저출산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심층 보도했다.

실제로 태국의 경우 1970년대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7명이었으나 최근에는 1.6명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출산율이 1.2명, 일본이 1.4명, 홍콩 1.1명, 싱가포르 1.2명 등에 비하면 높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이다. 저출산 현상이 생겨나면서 노동가능인구 증가폭이 예전만 못하다. 젊은이들은 거주비용이 더 들지만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주거비와 교육비 등이 더 많이 들게 됐다.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생활수준을 맞추기 위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엄두를 내지 않고 있다. 20년 전 태국 북동부에서 방콕으로 이주한 앙사나 니왓(38·여)은 “경제적 이유로 6세 된 아들 외에 동생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그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아나가기 힘들다”면서도 “일을 하려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젊은이들이 부족하다 보니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잉락 친나왓 총리의 퇴진을 둘러싼 시위가 연일 벌어진 방콕의 경우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시위대 곳곳에 보이기도 했다. 수카크리 솜콩(74)씨는 “늙은이가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 같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는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을 주축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던 국가의 경제성장 전략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태국은 노동인구 증가세가 확연히 줄어들면서 섬유산업 등 일부는 임금이 보다 저렴한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로 설비를 이전하고 있다. 캄보디아 등은 상대적으로 태국보다 출산율이 높고 평균 연령도 젊다.

중국 역시 2012년 노동가능인구가 345만명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245만명으로 감소폭이 줄었지만 노동력 부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그동안 고수해 왔던 한 자녀 정책을 완화하고 거주지 이전을 보다 쉽게 만들어 노동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남미의 개발도상국인 칠레는 호주나 프랑스의 전례를 따라 세 번째 아이를 갖는 부모에 대해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육아 비용을 줄이고 교육비 절감 방안을 마련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브라질과 멕시코, 인도 등이 모두 저출산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라다.

미국보건통계센터(NCHS)는 최근 경제가 개선되면 출산율도 안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경제위기 시작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출산율이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된 2012년 1.9명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4년 연속 감소세에서 돌아섰다는 것이다.

유엔은 세계인구가 2050년 83억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100년에는 72억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바바툰데 오스티메힌 유엔 인구프로그램 국장은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고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고 있다”며 “만약 각국 정부가 대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문제는 위기이자 기회다. 우선 고갈되는 천연자원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이지만 인구 감소가 대공황이나 일본의 경기침체에서 보듯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인구통계학 연구를 하는 마이클 테이텔바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1인당 출산율 2.1명에 미치지 않는 노령국가에 살고 있다”면서 저출산 문제는 극복하기 나름이라고 분석했다.

젊은이가 떠난 시골 마을에서는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게 진행 중이다. 농촌마을인 반농통림(Baan Nong Thong Lim)에서는 사원을 중심으로 노인에 대한 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35세의 한 승려는 “노인을 돌봐줄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라임 수확량을 늘리고 고소득 작물인 버섯 재배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원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소개한 사닛 팁난그롱(58·여)은 “예전에는 잘살게 해 달라는 기원만 사원에서 했는데 요즘은 작물 재배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정글이었던 농촌마을인 반탐타켐에서는 고소득 작물인 난과 라임을 키워 방콕에서 판매하고 있다.

보건전문가로 주로 농촌지역의 피임문제를 다뤘던 메카이 비라바이드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며 “장년층 어른에게 더 많이 배워 소득을 늘리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신과 아이 없는 가정에 가혹한 세금을 물리는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정부가 더 이상 저출산 문제를 외면하고 아이를 더 낳도록 하기보다는 저출산 현상 속에서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