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식의 증거조작 수사론 특검 피할 수 없다
입력 2014-04-02 02:51
국정원 윗선 수사 못하고, 검사 봐주면 국민이 납득하겠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검찰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수사가 벌써부터 실체적 진실 규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검찰이 기소한 피의자는 간첩사건 문서 위조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과 협조자 단 두 명에 불과하다. 이런 어마어마한 범행에 가담한 사람이 이들 두 사람뿐이라고는 검찰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국정원의 문서 위조 행위는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범죄조직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피고인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문서 위조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문서 위조를 은폐하려고 공식 외교공문을 가로채고 심지어 재판 과정에서 위조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증거를 위조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조직 윗선의 사주나 비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미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처럼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면 증거 위조와 조작을 지시한 최고 윗선을 밝혀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의 거센 반발과 비협조 탓이다. 기소된 대공수사팀 김모 과장은 “윗선이 없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고, 국정원 권모 과장은 검찰 수사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살을 기도한 마당이다.
검찰은 자살 기도와 수사는 별개라고 했으나 칼날은 무뎌졌다. 검찰이 김 과장 직속상관인 이모 대공수사처장(3급)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얘기가 단적인 예다. 그동안 국정원 직원 10여명을 조사했으나 이 처장 윗선에서 문서 위조를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다는 진술이나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서 위조에 관한 모든 일이 3급 전결로 이뤄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꼬리 자르기 수사’ ‘짜맞추기 수사’라는 야당의 주장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유씨 사건 초기 수사와 항소심 공판에 관여했던 두 명의 부장검사에 대한 검찰의 조사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을 보더라도 문서 위조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두 부장검사는 “위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나마 조사도 한 차례로 끝냈다. 국정원 수사팀과 대책회의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이다. 검사들의 진술이 사실이더라도 이들은 검사로서 자질이 없거나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인정, 불기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로 국정원의 대공수사력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들이 적잖은 게 사실이다. 한시도 소홀해선 안 되는 게 국가 안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개인의 인권이다. 만에 하나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특검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