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모처럼 머리 맞댄 한·중·일
입력 2014-04-02 02:49
지난달 20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중·일우호환경보호센터. 한·중·일 3국 정부 관계자들이 모처럼 마주 앉았다. 정복영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과장(한국), 루스쩌(祿世澤) 환경보호부 대기오염방지과장(중국), 오가와 마사코(小川眞佐子) 환경성 대기분야 국제협력과장(일본)이 각각 대표였다.
‘한·중·일 대기분야 정책대화’라는 명칭에서 보듯 국경을 넘어서는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최근 3국간 분위기에 비춰 보면 이번 회의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회의 장소가 일본이 무상 지원한 자금에 중국 정부 예산을 보태 건설됐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었다. 이틀 동안 계속된 회의에서는 앞으로 초미세먼지, 공장배출 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등 3개 분야를 놓고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5월 일본에서 개최된 3국 환경장관회의에서 합의한 데 따라 열리게 됐다. 내막을 보면 한·일 양국의 압박을 중국이 받아들인 형국이다. 중국은 회의에서 3국 협력보다 한·중 협력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은 한·중과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였다.
지난달 25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시강(西崗)구 뤼순일본관동법원구지(舊址).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을 하루 앞두고 찾은 이곳에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의 역사적 의미가 잘 전시돼 있었다. 랴오둥(遼東)반도 남단에 위치한 다롄은 일본이 관동군사령부와 남만주철도를 설치했던 만주 침략의 근거지였다.
안 의사는 이 법원에서 열린 재판을 통해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전 세계를 향해 낱낱이 고발했다. 당시는 일본이 한반도에 이어 만주를 집어 삼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안 의사의 의거는 일본과 구미 열강이 앞을 다퉈 중국을 병탄하고 있던 상황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법원 건물은 2000년대 초까지 뤼순시립병원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뤼순순국선열기념재단(이사장 홍일식)은 2002년 이 건물 50년 사용권을 사들인 뒤 원형 복원 작업을 거쳐 2006년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법원 내 일본 신사(神社)가 있었던 곳에는 지금 안중근 사당이 마련돼 있다.
일본은 한·중 양국과 스모그 대책을 논의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한·중·일이 서로 협력할 분야는 분명 있다. 하지만 영토나 과거사 문제로 돌아가면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아예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유럽 순방 중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안중근 기념관을 놓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일본을 향해서는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 군·민을 30여만명이나 도살했다”고 난징대학살을 작심하고 거론했다.
이를 두고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일 양국간 관계 개선 없이는 서로 테이블에 마주 앉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3국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일, 중·일 사이에는 ‘애국지사냐 테러리스트냐’라는 시각차만큼이나 깊은 골이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비정치적이면서 협력 가능한 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접촉을 해 나가야 한다. 한·중·일 관계는 베이징 상공에 짙게 내려앉은 스모그만큼이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3국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