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메가마트 이긴 안신야 이야기

입력 2014-04-02 02:48


일본 도쿄의 변두리, 오타구(區)의 기타레이초에 있는 30평 규모의 작은 채소가게 안신야(安信屋). 그 길 건너에 어느 날 일본 최대의 메가마트인 주스코가 문을 열었다. 주스코는 문을 열자마자 개업기념 세일에 들어갔고, 손님들은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안신야는 파리 날리는 가게로 바뀌어갔다.

지난 20년간 안신야의 스즈키 아키라 사장은 지역주민을 상대로 장사를 잘해 왔는데 그만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5층의 우람한 건물에 다양한 상품을 갖춘 수천평의 매장, 매일 빵빵하게 돌아가는 에어컨, 먼지 하나 없는 청결함까지 갖춘 주스코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속도전과 기습세일로 승기 잡다

6개월쯤 지나자 안신야 사장은 가게를 그만두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섰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스코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세일 깃발을 몇 개 준비했다. 주스코가 미끼상품으로 배추 한 포기에 100엔 세일에 들어가면, 그 순간 그는 주스코보다 더 낮은 배추 한 포기 50엔이라는 세일 깃발을 걸었다.

두 번째로 그는 주스코 같은 메가마트는 매우 복잡한 유통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배추 한 포기가 산지에서 점포까지(산지 매입-운송-주스코 물류창고-물류 전산화-지점 분배-운송-지점 도착) 24시간이나 걸리는 유통체계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속도전으로 주스코를 공략할 작전을 세웠다.

먼저 그는 매일 아침 5시, 밭에 가서 그날 팔 배추 무 파 시금치 등을 뽑아 트럭에 싣고 가게로 직송해 왔다. 그전까지 그는 채소 도매상에서 자신의 가게까지 일일이 배달까지 해주는 채소를 팔았는데 그런 안일한 방식을 과감히 집어던져 버린 것이다. 그는 새벽 5시에 뽑은 채소를 아침 9시 이전에 자신의 가게에 진열했다. 불과 4시간 만에 밭에서 뽑은 채소를 판매하기 시작하니까 신선도 면에서 주스코의 채소는 안신야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셋째는 주스코의 세일이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사의 통제 아래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은 주스코가 할 수 없는 품목까지 세일을 오전 10시에 한 번, 오후 3시에 한 번 실시했다. 즉 주스코는 미끼 세일 상품을 일주일 전에 본사에 요청해서 물량을 확보한 후 세일을 하는 데 비해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세일 판매를 했다. 자신이 주인이므로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인데 스즈키 사장은 여기에 새로운 전략을 도입했다. 우선 전체 채소 중 20%는 원가 이하 판매, 20%는 원가, 나머지 40%는 정가판매, 20%는 고가판매라는 특이한 마케팅 방식을 고안해냈다. 다시 말해 40% 정도 상품은 적자거나 원가이지만, 나머지 60%는 정상가 이상으로 판매해서 이익이 남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배추는 미끼상품으로 원가 이하로 밑지고 팔지만 손님은 배추를 가져다 기무치를 만들기 위해 생강, 청각, 마늘, 파 등을 또 구입해야 하므로 거기서 이익을 남기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우리 재래시장 상인들도 배워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손님들은 안신야가 주스코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낫다면서 하나둘씩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안신야는 연간 50억원어치, 매달 4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도쿄 최고의 채소가게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 안신야’라는 기사로 안신야를 배우자는 열풍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도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만 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안신야 같은 기발한 전략으로 새롭게 도전해봄이 어떠하신지.

홍하상(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