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새로운 발전전략의 필요성
입력 2014-04-02 02:19
새로운 경제성장의 계기가 시급하다는 인식은 일반적이다. 고도성장에 익숙한 우리에게 지금의 저성장 기조는 상당히 당황스럽다. 모든 문제 해결의 초점은 성장률 제고로 귀결된다. 그것만이 작금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 확신한다. 증세는 피해야 할 선택지이만 규제 완화는 시장 활력을 위한 방책으로 강조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이러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그러한가. 다른 형태의 발전 모델은 불가능한 것인가.
지난 10년의 한국경제 자화상은 이러한 사고방식의 불편함을 보여준다. 2002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45% 증가했다. 세계 500대 기업에 17개가 선정됐고,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5배나 늘었다. 세계 8대 무역대국, IT 강국, 조강 및 자동차 생산량 5위 등 성공 신화는 넘쳐난다. 그런다고 한국사회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절대빈곤율은 7.8%에서 9.1%로, 상대빈곤율은 13.1%에서 14.3%로, 비정규직 비율은 27.4%에서 33.3%로 증가했다.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평균 노동시간 1위, 자살률 1위, 행복지수(BLI) 26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게 되면 경제성장의 성과가 무엇이었던가를 의심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GDP의 세계에서 떠나야 한다. 경제성장과 국민행복의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은 경제학의 핫이슈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8년 국민행복을 규정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든 것, 일본 독일 영국 등에서 국민행복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가 발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GDP가 아니라 국민행복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정책의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요즘 떠들썩한 규제 완화 열풍도 국민행복에 필수적인 환경 및 안전 관련 규제라면 완화가 아니라 당연히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철 지난 낙수효과는 그만 노래해야 한다. 대기업의 투자가 국내의 고용과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멘큐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초판에서 낙수효과를 강조한 소위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을 ‘괴짜 사기꾼들’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원조인 미국에서조차 별로 신뢰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로 성장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기존의 양극화 성장이 아니라 평등지향적인 균형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그의 명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경제성장의 목적은 우리의 삶의 질을 증대시킬 능력(capability)의 확대에 있다고 본다. 경제적 평등성은 능력을 확대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역사적 사례, 학적 논거 모두 충분히 존재한다. 미국의 뉴딜정책, 북유럽의 복지 주도형 성장 등은 성장과 평등이 배치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양자가 배치된다는 교과서적 지식에서 이제 탈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0년 뒤 먹거리를 책임질 혁신경제 정책과 서민생활 안정을 도모할 사회적경제 정책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사회적경제 정책의 주요 목적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방식으로 한국인 하위 20%를 재조직하는 것이라고 본다. 만약 10대 재벌을 경제민주화의 대상이라고 본다면 ‘10대 재벌 이하와 하위 20% 이상’을 업그레이드시켜가는 것이 앞으로의 균형 성장에 있어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것이 바로 혁신경제 정책인 것이다. 단순한 벤처 정책의 범위에서 벗어나 농업 식품 섬유 화학 기계 중소기업 골목상권에 이르기까지 혁신의 경로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혁신경제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적경제 정책으로 서민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균형 성장과 국민행복에 복무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성장 전략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