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로 드러난 국정원 ‘증거 위조’ 과정… 유우성 증거서류 필요할 때마다 각본대로 문서 위조
입력 2014-04-01 03:34
국가정보원이 피고인 유우성(34)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 서류가 필요할 때마다 수차례 내부회의를 거쳐 문서 위조를 모의하고 실행을 지시한 것으로 31일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국정원은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공식 외교공문을 가로채는 방법까지 동원했고, 위조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증거를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허룽시 공안국 명의 사실확인서 위조 전모=국정원의 증거 위조는 대공수사팀 내 기획담당인 김모(48) 과장(일명 ‘김 사장’)이 중국 내 협조자 A씨를 통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허룽시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김 과장은 지난해 9월 검찰 공소유지팀이 내사과정에서 입수한 출·입경기록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자, 권모(51) 과장(수사·공판지원 담당) 등과 함께 내부회의를 열었고, 이때 중국 내 협조자를 통한 문서 입수를 계획했다.
그러나 검찰이 김 과장이 건넨 출·입경기록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허룽시 공안국에 발급확인서를 요청하기로 하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국정원의 증거위조는 이때부터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김 과장 등은 검찰의 공문이 ‘대검→주선양 총영사관→허룽시공안국→주선양 총영사관→대검’ 형태로 정식 발송된 흔적을 만들기 위해 ‘공문 빼돌리기’ 작전을 짰다. 김 과장은 이인철 선양 총영사관 영사에게 “발급확인서 요청 공문을 11월 12일 오전 10시30분쯤 팩스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후 국정원과 끈이 닿아 있는 허룽시 공안국 내부자에게 팩스 발송시간을 미리 알려줘 중국 책임자가 공문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김 과장은 동시에 다른 라인을 동원해 발급확인서를 위조했다.
김 과장 등은 지난해 11월 27일 국정원 수사팀 사무실에서 중국 웹팩스 업체 ‘엔팩스24’에 접속해 허룽시 공안국이 발송한 것처럼 선양 영사관에 팩스를 발송했다. 김 과장은 팩스 발신번호가 잘못 기재되자 허룽시 공안국 대표번호로 재차 문서를 송부한 뒤 검찰 제출을 지시했다.
◇싼허변방검사참 답변서 위조 직접 지시=김 과장은 지난해 12월 6일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증거위조 논란이 불거지자 다시 증거 위조를 계획했다. 김 과장은 이튿날 협조자 김모(61·구속기소)씨를 불러 “유씨 측이 제출한 싼허변방검사참 문서가 사실과 다르다는 답변서를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김씨가 “가짜로 만들어 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자 김 과장은 “중국에서 문제가 될 리 없으니 걱정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김 과장은 답변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을 알려줬고 김씨는 이를 종이에 적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김씨는 김 과장 지시대로 답변서를 작성했고 중국인 위조업자에게 관인 제작을 의뢰했다. 김 과장은 김씨로부터 “위조업자가 수수료로 4만 위안(740만원)을 요구하는데 가능하냐”는 문의를 받고 “그대로 진행하라”고 승낙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과장은 위조된 답변서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이 영사에게 영사확인서 작성도 지시했다. 이 영사는 답변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고서도 가짜 확인서를 만들고 영사확인까지 받아줬다.
국정원의 증거위조는 지난 2월 14일 주한 중국 대사관에서 증거위조 회신이 오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김 과장은 지난 2월 초순 김씨에게 유씨 변호인 측이 제출한 옌볜조선족자치주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과 공증서까지 위조하도록 지시했다. 김씨는 중국에 있는 지인에게 자동차운전면허증 공증을 받게 한 뒤 접수증 번호를 이용해 공증서를 만들고 관인을 위조해 김 과장에게 건넸다. 하지만 이 위조문서는 증거위조 논란이 확산되면서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되지는 않았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