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舊동독으로의 추억 여행

입력 2014-04-01 02:39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대북 3대 제안을 발표한 독일의 드레스덴은 통독 이전 동독지역에 속했다. 독일 동부 작센주의 주도이기도 한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전쟁 중 폭격으로 산업기반이 철저히 파괴됐다. 하지만 공산국가 동독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 중의 하나로 복구됐다.

북한의 김일성도 1956년과 1984년 두 차례 드레스덴을 방문, 도시를 둘러봤다. 북한의 번영을 위해 드레스덴을 벤치마킹하고 싶었을 것이다.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동독

기자는 독일이 통일된 지 얼마 안 돼 옛 동독지역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통일된 지 8년 만인 1998년 5월 제13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취재를 위해서였다. 독일은 통일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처음 세계여자농구대회를 유치했었다.

한국의 조별 예선전은 서독지역이던 뮌스터에서 열렸다. 당시 세대교체의 어려움 속에서 예선 3경기를 모두 패한 한국은 곧바로 짐을 싸 13∼16위전이 열리는 데사우로 옮겨야 했다. 열차에 몸을 싣고 느긋이 전원 풍경을 감상하던 중 다리 하나를 건너자 아주 낯선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낡은 건물들이 곳곳에 내팽개쳐져 있는가 하면 농촌의 풍경은 잠시 전 봤던 독일 농촌과는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옛 동독지역에 들어왔다고 했다. 냉전시절 공산국가 가운데 가장 부유했다는 동독지역의 초라함은 충격적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금강산 관광을 위해 찾았던 북한 장전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동독 지역과 오버랩되며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의미 깊은 드레스덴 선언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힘써 이뤄야 할 민족적 과제를 제시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농업·교통·통신 등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민생인프라 건설, 통일의 토대가 될 남북 동질성 회복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민족의 숙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일단 비난부터 퍼부었다. 북한 외무성은 제4차 핵실험 위협도 했다. 31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해상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우리가 내민 손을 더 이상 거부하기에는 북한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드레스덴 선언은 멀게는 화해의 물꼬를 튼 1974년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가깝게는 2007년 10·4 선언도 계승하고 있다. 7·4 공동선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한과 함께 한 것이고 10·4 선언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이다. 드레스덴 선언이라고 명명했지만 7년 전 양국 최고 지도자가 합의한 내용이 핵심으로 담겨 있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하면서 대만을 비롯한 해외 화교자본을 끌어들여 경제개발을 본격화했다. 북한도 드레스덴 선언을 수용하면 남한과 해외 한상의 자본으로 북한주민들의 삶을 바꿔놓을 기회가 온다. 10·4 선언을 계승한 드레스덴 선언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져서는 인민 생활만 피폐해질 뿐이다.

드레스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사우는 후에 안 사실이지만 모던 디자인의 산실인 바우하우스의 고장이었다. 작은 소도시에서 잉태한, 대중의 편리함을 생각한 디자인 정신은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 현대 건축과 조형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통독의 상징도시인 드레스덴에서 밝힌 대북 제의도 바우하우스의 정신처럼 큰 울림이 돼 분단국의 상처를 어루만졌으면 좋겠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