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익철] K팝 연계 ‘서초 한류특구’ 추진
입력 2014-04-01 02:39
아시아에는 특이한 문화 흐름이 있다. 약 10년 주기로 특정 국가의 문화가 유행을 주도하는데 1980년대에는 영화를 중심으로 홍콩이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었고(홍콩류·항류·港流), 1990년대는 일본의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널리 유행했다(일류·日流).
그러나 홍콩류로 대변되는 홍콩 대중문화는 20세기 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문화 제작자들이 미국 등지로 떠나자 그 성장세가 꺾이고 말았다. 세련되고 서구화된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일본 열풍을 몰아간 일본 대중문화는 쓰라린 제국주의를 겪은 나라들의 반감과 보편성이 부족한 콘텐츠로 인해 결국 세계적인 공감대 확산에는 한계에 부닥쳤다.
그 후 1990년대 후반 아시아 대중문화의 샛별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한류다. 지난해 음악, 영화, 성형 등 ‘한류’ 관련 무역수지 흑자가 3억 달러에 육박하면서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지난 2010년까지는 4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나 한류 바람을 타고 3년 만에 3억 달러 가까운 흑자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한류의 예상 지속 기간을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니 4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60%를 차지했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2012년 1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던 것이다. 홍콩이나 일본의 선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몇몇 불후의 명곡을 제외하고 ‘유행가’는 말 그대로 유행을 따라 흘러가는 음악이듯 한류 또한 대중들과 일시적 교감에만 의지한다면 생명력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한류가 홍콩류나 일본류처럼 몰락하지 않으려면 대중문화 중심에서 벗어나 문화예술과 한류의 연계를 통한 콘텐츠 다변화가 필요하다.
25년 전 서울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 갓 모양의 석조 건물이 들어섰다. 지난해는 연간 300만명이 찾았던 예술의전당이다. 주변 골목은 종로 낙원상가에 있는 클래식 악기 관련 가게들이 하나 둘 옮겨오면서 악기거리가 됐다.
주변 도로와 주택가를 따라 150여개 클래식 악기상이 모여 특이한 거리 풍경을 연출한다. 악기상들은 건물 전체를 활용해 악기상뿐 아니라 전시장, 공방 그리고 미래 클래식 꿈나무들의 공연과 연습이 한창인 소규모 콘서트홀도 운영하고 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악기거리의 풍경은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굵직한 예술 인프라를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매력적인 거리 인프라를 일부 주민들만 향유하고 있다. 아직 불씨가 활활 타고 있는 한류 열풍에 예술의전당 앞 악기거리의 클래식 음악과 국립국악원 등의 한국 클래식을 더한다면 한류는 시너지 효과를 더해 그 생명력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 서초구청은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문화시설이 집적돼 있는 서초동 일대를 K클래식 구역으로 지정해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과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은 잠원동 일대는 K팝 구역으로 정해 K팝 전용 공연장을 짓는 등 국내 최초의 지역특화발전특구(가칭 ‘서초 K-한류문화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류의 신(新)성장 에너지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문화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인과 함께 호흡하고 하나가 될 제일 좋은 방법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국민과 예술인이 체감할 수 있는 문화융성 정책의 주연과 감독은 국민 모두가 돼야 한다. 서울 서초구 주민들의 행복한 문화일상이 한류 열풍을 타고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번져가기를 희망한다.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