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다양한 의미·작용, 극장이라는 프레임으로 제시… 42세 동갑내기 부부작가 뮌의 ‘기억극장’

입력 2014-04-01 02:41


작가는 국내 재벌 가문을 분석해보니 결혼으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를 조명 전구와 아크릴판으로 연결시켜 설치작품 ‘혼맥도’(사진)를 만들었다. 자본과 권력이 결속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지적하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2006년 귀국한 후 8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42세 동갑내기 부부작가 뮌(김민선+최문선)의 ‘기억극장’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16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길리오 카밀로가 고안한 ‘기억극장’은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온갖 지식이 축적된 공간이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소수는 무대에 서서 객석에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과 기호를 대면하고, 이를 기억해 다른 이에게 전달했다. 지금으로 치면 작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작가는 서울 강남구 언주로 코리아나미술관에 기억극장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사실 기억은 불완전하고 변형되기 쉽다. 개인의 기억도 그렇거니와 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지는 사회적·역사적 기억 역시 잊혀지고 왜곡될 여지가 많다. 뮌은 이번 전시에서 기억의 다양한 의미와 작용을 극장이라는 시각적 프레임으로 제시한다.

5개의 책장이 반원형의 극장 구조를 이루는 설치작품 ‘오디토리엄’은 숱한 기억의 파편들을 수백 개의 오브제를 통해 보여준다. 관람차와 화투패, 자유의 여신상, 탱크, 축구장 골대 등 별의별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작품 뒤로 돌아가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 앞에서 만난 오브제에 대한 기억과 뒤에서 본 그림자가 조금씩 다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중심으로 오각형의 아크릴 박스가 설치된 작품 ‘오프 스테이지’는 각기 다른 다섯 가족의 장식품을 볼 수 있다. 개인의 기억이 축적된 보관소가 가정이라는 데서 착안한 작품이다. 미국 뉴욕의 여러 동상을 촬영한 작품은 화려한 도시 가운데 점차 기억 너머로 사라져가는 역사의 주인공들에 대한 애잔하고 쓸쓸한 모습을 전한다(02-547-9177).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