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13) 바지, 안전한 멋

입력 2014-04-01 02:49


치마는 다리를 매끈하게 만들고 다리 살을 줄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바지는 다리를 덮어버린다. 하나 덮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허리, 아랫배, 허벅지, 엉덩이에 기거하는 살집은 두 다리가 거동할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도 바지를 찾는 까닭은 거침없이 움직이도록 허용하는 바지의 활동성을 치마는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지는 치마에 비해 여성성이 떨어지지만 안전하기에 듬직하다.

여자들이 바지를 자연스럽게 입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해 기능적인 옷으로 진일보하면서부터다. 바지는 1930년대 샤넬에 의해 여성미를 갖춘 리조트웨어, 1950년대 광부의 작업복으로 고안된 리바이스의 청바지, 패션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이 파괴된 1960년대 쿠레주의 기하학적인 팬츠 슈트, 1970년대 히피 스타일에서 비롯된 통 넓은 판탈롱, 디스코 붐이 낳은 가죽 바지, 1980년대 자루처럼 헐렁한 배기팬츠, 1990년대 스포티한 레깅스 팬츠, 2000년대 조임과 신축성을 겸비한 슬림 핏을 거치며 여성의 동작에 날개를 달아준 공신이다. 시간을 타고 바지는 영특해졌다.

치마인지 바지인지, 레깅스인지 바지인지 헷갈리는 스릴을 제공하고 보편적으로 통이 좁아지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지는 어떤 스타일로 입는가에 따라 하체의 비율이 울고 웃는다. 체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바지를 사러 나갈 때는 각오를 단단히 굳힌다. 금세 해결되는 성질의 쇼핑이 아님을 알기에. 바지는 ‘장만’하는 옷이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