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손 내민 朴, 유연해진 대북정책으로 통일행보 잇는다

입력 2014-03-31 02:38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통일 구상을 제시한 박근혜 대통령이 유연한 대북 접근법을 본격화할 조짐이다. 집권 첫해에는 북한발(發) 한반도 안보위기로 인해 자신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권 2년차부터는 낮은 단계(북한 비핵화 전제 없는 인도적 문제 해결·공동번영 인프라 구축·동질성 회복)를 시작으로 중간 단계(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대적 경제지원), 높은 단계(동북아 다자 안보협의체 추진)로 나아가는 남북 간 ‘신뢰 쌓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 대박’ 로드맵 구체화=박 대통령은 독일 방문 과정에서 “통일이 단순히 하나의 영토, 하나의 체제를 만든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체제의 단순결합을 넘어 ‘통합된 한반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은 남북통일 이전부터 우리가 먼저 통합 행보로 나아가겠다는 일종의 로드맵으로 여겨진다.

드레스덴 선언에 들어 있는 북한 산모와 유아를 지원하는 ‘모자 패키지(1000 days)’사업과 북한지역 농업 축산 산림을 함께 개발하는 ‘복합농촌단지’ 조성 등은 북한이 호응해 오면 지금 당장이라도 진행이 가능한 프로그램들이다. 교통·통신 인프라 건설이나 북한 지하자원 공동개발 등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과 상충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추진될 수 있다. 남북 교류협의회 설치를 통한 양측 간 민간 교류 역시 특별한 전제가 필요 없는 일들이다. 다만 나진·하산 물류사업 등 남북·러 경제협력 사업이나 신의주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중 협력사업 등은 5·24조치 해제와 북한의 비핵화 선제 조치가 필요한 사안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정부는 박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 로드맵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구상에 대해 “5·24조치나 3대 제안에 포함된 다양한 사업들이 국제사회의 제재 등과 상충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성공 열쇠는 북한 호응 여부=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북한이 가장 걱정하는 ‘체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남북 간 공동 번영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호응해올 여지를 충분히 제공했다는 의미다. “지금부터 ‘한민족에 의한 한반도 통일’ 기반을 조성해 가야 한다”며 북한이 앞세우는 ‘자주적 방식의 통일’ 화두를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런 스탠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기존처럼 핵 무장 노선을 계속 강화하고 안보 도발을 거듭한다면, 드레스덴 선언도 7·4남북공동성명이나 6·15공동선언 등과 마찬가지로 단지 ‘선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은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스스로 천명해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남측의 제안을 북한이 ‘일방적인 내용뿐’이라며 아예 무시하지 않겠느냐”는 비관론이 상당한 이유다. 북한은 독일 방문이 끝난 뒤에도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전을 이어가고 있고,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북한의 대남 강경 입장을 우리 정부가 어떻게 완화시키느냐에 박 대통령의 3대 제안 성사 여부가 걸려 있는 셈이다.

◇대일(對日) 관계 복원 시발점=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은 지난해 국내외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한·미동맹 강화뿐 아니라 중국과의 밀월 외교, 대북 원칙 스탠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우방인 일본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과거사 왜곡 행진이라는 정당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지난일’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까지 훼손해선 안 된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가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일본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첫 단추 끼우기로 해석된다. 안보 문제에 국한된 회담이긴 해도 아베 총리와 처음으로 진지하게 회담을 나눴고, 일본 정치권에 한국과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환기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과거사 반성’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필요한 사안에 대해선 일본과 대화 테이블을 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