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부가 수용키로 한 과제 42건 분석해보니… ‘규제=암덩어리’ 아닌 것도 많다
입력 2014-03-31 02:11
모든 규제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도입됐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유지했을 때와 없앴을 때 공공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국민일보가 30일 규제완화 끝장토론에서 제기돼 정부가 수용키로 한 42건의 과제를 분석한 결과 ‘규제=암덩어리’로 규정짓기에는 무리한 과제들이 다수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튜닝 규제완화다. 정부는 규제 때문에 튜닝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업계 건의를 수용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승인이 필요 없는 튜닝대상이 대폭 확대되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구조·장치 변경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규제를 강화했다. 당시 국토부는 출입문 개폐는 구조변경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구조변경’ 대상에서 제외했다. 차량 문을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꾸면 안전사고 유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택배차량 증차 문제도 정부 방침이 180도 바뀐 사례다. 택배업계는 정부의 허가제 방침으로 택배 차량이 부족해 불법 택배차량을 이용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정부는 그러나 2004년 이후 화물운송업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영세사업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신규 증차를 전면 금지했다.
퇴직연금 규제개선은 금융위원회와 고용노동부 간에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완화 과제에 포함됐다. 자산운용업계는 퇴직연금 자산운용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도록 주식투자 한도 기준 완화 등을 요구했고, 정부는 업계 의견 등을 수렴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퇴직연금에 대한 투자 규제는 개별 근로자들이 퇴직 이후 생계를 의지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특수성에서 생겨났다. 노동부 관계자는 “은퇴 근로자들의 생활보장을 위해 자산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끝장토론과 관련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법부가 판단한 사안을 정부가 반박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학교 주변 호텔건립과 관련해 대법원은 대한항공이 서울 경복궁 인근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 호텔시설과 영업을 금지한 학교보건법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학습권 보호를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학교정화위원회 훈령을 제정해 대한항공 호텔 건립을 해결해주겠다고 밝혔다.
영세사업장에 대한 근로시간 단축 부담 완화 역시 장시간 근로시간 개선을 통해 근로자 복지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겠다는 논리와 대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완화 속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부처간 조율 등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규제개혁은 여러 부처들이 걸려있는 데다 트레이드오프(상충관계) 때문에 시간을 갖고 조율을 해야 하는 문제”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하나하나 풀 게 아니라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