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교회를 통하다 4] 동독 첫 총선거 독일연합 승리… 총리 등 주요 내각이 목사 출신
입력 2014-03-31 04:01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주민의 안식처이자 보호자 역할을 했던 교회는 정치 참여에서도 민의를 잘 반영하는 대변인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당시 동독 주민들의 요구사항이었던 급진적 흡수통일을 내세운 동독 기독교민주당(CDU)이 동독의 첫 자유 총선거에서 승리를 거뒀고, 과도정부에서도 목사 출신이 요직을 차지해 통일을 주도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4개월 후인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사상 첫 자유 총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총선에는 24개 정당 및 단체들이 참여했고, 통일의 방법과 속도가 주요 이슈였다. 선거에서 동독 CDU와 독일사회연합이 연대한 독일연합은 조속한 통일을 내걸었다. 독일연합은 당시 서독 집권당이었던 CDU의 지원을 받았다. 이에 맞서 진보세력이 뭉친 동독 사회민주당(SPD)은 우선 동독이 경제를 발전시켜 동독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서독과 같은 수준으로 향상시킨 후 통일을 달성하자고 주장했다. 동독을 철권통치한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인 민주사회주의당(PDS)은 국가연합을 거친 단계적 통일을 지향했다.
총선 결과는 교회 세력이 중심이 된 독일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득표율에서 독일연합은 전체의 47.7%를 차지했다. SPD는 21.9%, PDS는 16.4%에 각각 머물렀다.
총선 후 독일연합은 CDU의 당수였던 로타르 드 메지에르가 총리가 돼 과도정부를 꾸렸다. 과도정부는 교회 중심이었다. 실제 드 메지에르 총리는 당시 동독기독교연맹(BEK) 부의장이었다. 내각의 요직이었던 내무·외무·국방 장관도 목사 출신이었다. 구체적으로 한스 빌헬름 에벨링 목사가 내무장관을 맡았고, 마르쿠스 메켈 목사는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라이너 에펠만 목사는 국방장관에 등용됐다. 과도정부 대변인에 임명된 인물은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었다. 결국 과도정부는 동독 주민의 민의를 받아들여 조기 편입 통일,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의 1대 1 교환을 추진했고,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합쳐졌다.
통일 후에도 교회는 정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모범을 보였다. 그 대표적 인물이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다. 가우크 대통령은 동독 목사 출신으로 통일 이후 구 동독 문서 관리청을 10여년간 이끌며 슈타지(동독 국가보안부)와 그 끄나풀들의 활동에 대한 추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대통령이 된 후에는 독일의 나치 과거사에 대한 참회로 전 세계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독일 대통령으로는 처음 제2차 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군이 대학살을 저지른 프랑스 중서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을 찾아가 참회했다. 에펠만 전 장관도 현재 동독 독재청산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동독 정권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를 고발·극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모규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