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교회를 통하다 4] ‘오시’ ‘베시’ 마음의 벽 허물고 오랜 분단의 상처 치유

입력 2014-03-31 03:11


(4) 통일 이후 사회통합에 앞장선 교회

독일 교회는 통일 이후에도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통합에 앞장섰다. 분단시절 서독 교회와 동독 교회가 형제애로 상호 연계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교류해온 것이 원동력이 됐다. 교회는 서독이 통일연대세금을 거둬 재정적으로 동독 재건을 돕도록 이끌었고, 다양한 연대를 통해 동서독 주민의 심리적 장벽인 오시(ossi·동독놈)와 웨시(wessi·서독놈)라는 비속어도 사라지게 했다.

무엇보다 교회가 동서독에서 ‘믿을만한 곳’이라는 공신력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사회를 견인할 수 있었다. 분단시절 자매결연을 맺은 서독 교회와 동독 교회는 통일 이후에도 계속 교류를 이어갔다. 서독 교회는 통일 이후 동독 교회 목사들의 봉급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교회는 새로운 통일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담론의 장을 제공하고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천아카데미운동이다. 이 운동의 기본 정신은 대화였다. 교회가 중심이 돼 각 주에 설치된 크리스천아카데미는 동서독 교사모임 등 각종 모임을 주선했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이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교제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전국적으로 조직된 크리스천아카데미는 다양한 영역에서 통일 독일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동서독이 함께 고민하면서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독일은 ‘사회국가’라는 명확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사회국가는 시장경제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사회적 동의를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적 개입을 강조하는 국가 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국가관에 기초해 나타난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경제가 단순히 이윤 추구와 경쟁이라는 자체 메커니즘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주는 가치나 도덕적 기준에 의해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가치와 기준에 대한 사회적 협의 과정이 필요한데 독일에서는 교회가 핵심 주체로 참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교회협의회(EKD) 사회연구소가 1991년 펴낸 백서 ‘공동 복지와 개인 이익: 미래에 대한 책임 안에서의 경제활동’이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발표된 이 백서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백서는 경제활동의 과제가 이웃에 대한 돌봄과 공동의 삶을 고려하는 가운데 자신에 대한 자립과 공급을 가능하게 구조를 만드는 것인데 사회적 시장경제가 가장 적합한 틀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이웃들’과 함께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권고했다.

이 백서는 통일 독일이 지향해야 할 사회적 정의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경제적 차이가 크게 나고 동독 주민들이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약자의 편이 되어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교회는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경제 문제에 개입하도록 권고하고 적극 도왔다. 백서 발표 이후 교회 내에서는 대토론이 벌어졌고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쳐 제도적인 개선으로 이어졌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30일 “통일연대세금이 늘어나는데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적 공동체 정신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백서 발간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동기와 이론적인 생각들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통합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십년간 상이한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뤘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질성과 그에 따른 상호 불신이다. 교회는 체제 변화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동독 사회의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서독 교회 목사들이 동독으로 건너가 노하우를 전수했다. 동독 주민들은 옛 동독 체제로 돌아가기는 싫고, 서독 체제에 적응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동독 공장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쇄됐고 실업자가 양산됐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교회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동독의 실업자들을 위로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도왔다. 지금도 독일 교회의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