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 VS 일본… 더 험악해진 ‘과거사 공방전’
입력 2014-03-31 03:21
한·중·일 간 과거사 갈등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겨냥해 날선 공세를 퍼붓는 건 도발을 멈추지 않는 일본의 자업자득 성격이 강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9일 출연한 TV도쿄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중국 하얼빈의 안중근 기념관을 “일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범죄자, 테러리스트 기념관”이라고 비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정상회담에서 안중근 기념관 건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시 주석에게 안 의사 기념비 설치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는 이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해 기념관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가 장관은 “(한·중 정상이)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취지에서) 벗어난 회담을 했다”며 양국 공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국 외교부는 30일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안 의사 폄훼와 한·중 정상회담 비판은) 상식 이하의 언동으로서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토 히로부미야말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총괄한 원흉”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의 ‘안중근=테러리스트’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스가 장관은 지난 1월 기념관 개관 때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했었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 왜곡 행보로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면서도 이 때문에 양국이 가까워지는 데는 조바심을 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스가 장관은 24일 정례회견에서 “전 세기의 사건(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일방적 평가에 입각한 주장을 한국과 중국이 연대해 국제적으로 전개하는 건 지역 평화와 협력 구축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스가 장관이 TV도쿄에 출연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는 건 중국·한국과의 관계로, 미·일 관계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며 대미 관계를 부각한 것도 불안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정작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해 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뒤부터 삐걱거리는 상태다.
유럽 순방 중인 시 주석은 2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공개강연을 하면서 “70여년 전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 난징시를 침략해 30여만명의 중국 군·민을 도살하는 전대미문의 참상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상이 외국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이토록 신랄하게 꼬집기는 유례없는 일이다.
시 주석은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중국 군·민 3500여만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간 참극’이 빚어졌다”며 “이런 역사는 중국 인민에게 뼈에 새길 정도의 기억을 남겼다”고 말했다.
강연 마지막엔 “귀국(독일)의 총리 브란트는 예전에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영혼에 병이 든다’고 말했다”며 “중국에는 ‘과거를 망각하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前事不忘 后事之師)’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난징기념관에 걸려 있는 문구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무성은 주일 중국대사관 측에 항의했다. 스가 장관은 기자들에게 “숫자(30만명 이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며 “중국 지도자가 제3국에서 그런 발언을 한 건 비생산적인 일로 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조선민주여성동맹 등 남북한 20여개 여성·종교단체는 29일 중국 선양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토론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범죄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투쟁과 연대활동을 강력히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강창욱 모규엽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