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목사의 시편] 숨겨놓은 욕망 지우기

입력 2014-03-31 02:28


‘갑신정변’(1884)의 주역인 김옥균은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본받아 개화정권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을 거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다.

조선 조정은 개화파 지식인 홍종우에게 김옥균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홍종우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익히고, 마흔의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한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전통 의상을 고집하고 ‘춘향전’과 ‘심청전’ 등을 번역해 유럽에 알렸다. 홍종우는 뛰어난 프랑스 요리 솜씨로 김옥균에게 접근, 1894년 3월 28일 마침내 암살에 성공했다.

김옥균과 홍종우. 두 사람은 한 살 차이의 또래이며, 일본 등 외국의 문물을 많이 접했고, 무엇보다 ‘이대로는 조선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개화파였다. 김옥균이 추구했던 메이지유신은 존황양이(尊皇攘夷), 즉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를 개혁해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자는 것이고, 홍종우는 근왕주의(勤王主義), 왕실을 중심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은 이처럼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홍종우로 하여금 김옥균을 집요하게 추적, 암살하도록 했을까.

경북대 법학대학원 김두식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실상 나의 마음의 욕망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고 적었다. 성경에 나온 다윗왕과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어린 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다윗이 ‘그렇게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죽어야 한다’고 화를 내며 말한다. 사실 양 한 마리 강탈한 것이 죽을죄라면 결코 공평한 형벌이라 할 수 없다. 다윗은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다.

필자는 이런 추측을 해본다.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한 것은 그에게서 자신의 욕망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복과 상투 등을 고집한 홍종우와 달리 김옥균은 단발(斷髮)도 하고 이와다 슈사쿠(岩田周作)라는 일본식 이름도 가졌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큰 내적 갈등을 겪었을 홍종우에게 김옥균은 편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는 너무나 잘 통했다. 실제로 김옥균은 홍종우가 조선조정에서 파견한 자일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경고를 일축해 버릴 만큼 둘은 친했다. 너무 닮았기에, 그리고 너무 닮은 자가 자신의 내면을 자극했기에, 홍종우는 김옥균의 숨통을 끊었던 것 같다.

용서할 ‘서(恕)’와 성낼 ‘노(怒)’는 매우 비슷한 모양의 한자다. 닮았기에 더 배려할 수 있고 닮았기에 더 미워할 수 있다. 닮아서 용서하게 되는 것은 뜻이 같기 때문이고, 닮았기에 미워하는 것은 감추어진 욕망 때문이다.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내 안에 감추어진 욕망은 무엇인지 십자가 앞에서 조명해보자.

<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