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안철수는 부산사람이 아니다?

입력 2014-03-31 02:05


지난 1월말 부산에서 만났던 60대 택시 기사의 정국 전망이다. 놀랍게도 택시 기사의 전망은 불과 한 달여가 지나 현실이 됐다. 지난 2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전격 발표했다.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과 손을 잡았다.

사실 안 대표의 출신 지역은 부산이 맞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부산에서 다닌 부산 토박이다. 그러나 안 대표를 부산 대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부산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17∼20일 한국갤럽 조사 결과 부산·울산·경남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도는 20%였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8% 포인트, 응답률 15%). 유력 부산시장 후보인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마저 안 대표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게 부산 민심이다.

결론적으로 안 대표에게 부산은 텃밭이 아니다. 안 대표에게 없는 것은 텃밭만이 아니다. 3가지가 없다. 지역, 패배, 새 정치다. 우선 지역이다. 민주당 소속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5년 제1회 부산시장 선거에서 얻은 표는 64만7297표(37.58%)였다. 2002년 16대 대선에선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부산 유권자로부터 58만7946표(29.85%)를 받았다. 10% 전후 득표율에 머물던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은 승리였다. 부산 시민들에겐 노 전 대통령이 부산 사람이었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산은 텃밭이었다. 지역 기반 정치의 폐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외면 받는 정치인은 불안하고 위태하다.

그리고 패배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땐 ‘아름다운 양보’라며 철수했고, 2012년 11월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대선에서 철수했다. 이달엔 인재 영입 실패에 몰리며 독자신당 창당에서 철수했다. ‘철수’는 있었지만 ‘패배’는 없었다.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물의 정계은퇴 선언’도,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름다운 패배’도,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의 ‘아름다운 승복’도 안 대표에겐 없다.

마지막으로 새 정치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건 새 정치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 새 정치는 안 보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때부터 ‘새 정치’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실체가 드러날 만도 한데도 말이다. 박 대통령의 ‘창조 경제’ 만큼이나 언제나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윤여준 전 새정치연합 의장마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감성적 언어로 추상성이 높은 모호한 말”이라고 정의했다. 새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피로감만 쌓여간다.

안 대표는 이제 그토록 미워하던 옛 정치의 프레임에 들어왔다. 그런 탓에 옛 정치 틀의 기본을 채워나가지 못한다면 대권 고지에 도달하긴 어려운 게 정치 현실이다. 부산을 향한 동진(東進) 정책이 필요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불사해야 한다. 그러나 6·4지방선거에 매몰되면 안 된다. 수도권과 부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과정이다. ‘죽어야 산다’는 정치권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자신만의 키워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구호 차원의 새 정치가 아니라 자신만의 키워드로 정리된 콘텐츠 있는 새 정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부산 사람도, 새 정치인도 아닌, 단 한번의 영광의 상처도 없는 안 대표를 ‘내 사람’으로 생각할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을 뛰어넘어 ‘부산 사람’이 되기 위한 ‘안철수의 숙제’다.

김영석 정치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