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FTA 실적 늘리기보다 질적 성장 도모할 때
입력 2014-03-31 02:31
中企·소비자도 실질적인 혜택 누리도록 해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일로 10주년을 맞는다. FTA는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인 우리나라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도전이자 과제다.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실보다 득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한·칠레 FTA가 체결되면 포도농가가 다 망할 것처럼 국내 농가의 반발이 극심했지만 기우였다. 한·미 FTA 추진 때는 스크린쿼터 축소로 국내 영화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배우들이 삭발을 하고 거리로 나섰지만 오히려 한국영화 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아세안, 인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46개국과 총 9건의 FTA를 발효시키며 명실상부한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FTA의 가장 큰 성과는 교역량이 늘어난 점이다. 한·칠레 교역량은 4.5배로 늘었고, 대 칠레 수출은 연평균 16.9%, 수입은 16.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교역규모가 2.9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FTA 효과라 할 만하다. EU와의 교역도 2011년 7월 FTA 발효 후 3년간 연평균 4.4% 늘었다.
하지만 FTA 체결 후 EU에 대한 무역수지가 15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고 칠레에 대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FTA 체결 실적을 늘리기에 급급해 정부가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뻥튀기한 것은 아닌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FTA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키워 수출시장을 넓히고 안방도 지키자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경제영토 확장의 과실을 수출 대기업만 누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1000개 무역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6%가 FTA를 활용했다고 답했다. 특히 매출액 100억원 미만 기업 중에는 56.5%만 FTA 활용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세밀한 지원이 필요하다.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FTA가 체결되면 값싼 농산물을 맛보고 유럽산 자동차, 명품 백 등의 가격인하를 기대했지만 수출국과 중간 유통업자들의 가격 농간에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FTA 체결 후 수입산 포도, 오렌지, 쇠고기, 돼지고기 등이 모두 값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죽했으면 국책연구기관이 FTA로 인한 수입 농산물의 관세 인하 효과가 상당 부분 수입 유통업자의 유통마진에 흡수됐다고 비판했겠는가.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가격인하 효과를 체감하도록 왜곡된 수입 농산물 유통구조를 바로잡고 독과점 폐해가 심한 부분에 대해선 규제가 시급하다.
세계 통상환경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F)이 세를 불려가고 있다. 올해 한·중, 한·중·일 FTA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제 판세를 정확히 읽고 하나를 내주고 둘을 얻는 고도의 협상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서비스산업과 문화산업 육성을 통해 FTA의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