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태국 김도연 선교사] ‘예수’ 안다는 사람만 봐도 흩어졌던 가족 만난듯…

입력 2014-03-31 02:33


기독인은 인구의 0.5%뿐

‘예수’ 안다는 사람만 봐도 흩어졌던 가족 만난듯…


4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태국력으로 새해를 맞는 송크란 축제 기간이다. ‘물의 축제’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축제가 태국 전역에서 열린다. 태국 사람들은 도로변에 커다란 물통을 갖다 놓고 춤을 추며 축제를 준비한다.

이들은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들에게 옛 모습을 씻어내고 복을 빌어 준다는 의미에서 물을 뿌리고 물총을 쏘며 축제를 즐긴다. 불교신자들이 대부분인 나라답게 공공장소에 설치된 불상을 씻는 행사도 열린다.

한 바가지 물로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생을 마친 후에는 또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지난 3월 1일에는 치윗니란교회를 맡고 있는 위라이 전도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위라이 전도사는 함께 신학을 공부한 니왯 전도사와 가정을 이뤘다. 시골에 사는 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르신급인 40세에 결혼을 하는 위라이 전도사가 앞으로 사역자 가정의 본이 되기를 기도했다. “태국 전통식으로 결혼하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예배를 보여주고 싶다”는 위라이 전도사의 뜻대로 나는 주례를 맡아 예배를 드리며 축복했다.

한국은 전 국민의 20% 안팎이 기독교인이다. 나머지 75∼80%의 비기독교인도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환경이 얼마나 큰 교회의 자산인지를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말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교회와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성경과 집회들이 넘치는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희망을 볼 수 있다.

세상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예수님’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 태국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태국 면 단위 지역 중 80% 정도는 교회가 세워져 있지 않다. 한국의 다섯 배나 되는 땅에 사는 6500만명 가운데 0.5%밖에 안 되는 기독교인들을 우연히 만나면 ‘이 사람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그렇게 반갑고 신기할 수 없다.

어쩌다 교회 십자가를 봐도 ‘물고기 스티커’를 붙인 차만 봐도 신기해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다. 예수님을 안다는 사람을 만나도,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사람만 만나도 흩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한국교회에서 태국에 오는 단기선교 대원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이는 척박한 선교지에 기독교 문화를 심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한 코리아페스티벌심포니(음악감독 이칠규)는 전문 음악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콘서트홀에서 우렁찬 박수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방콕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가야 도착하는 패차분도의 왕뽕군에 있는 시골학교를 다니며 복음성가를 연주하고 악기를 가르쳤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느라 땀을 흘렸다.

태국의 시골 어린이들 상당수는 이들 덕분에 오케스트라 연주회뿐 아니라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의 악기를 처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학교 연주를 마친 뒤 마을 주민들을 교회로 초청해 연주회를 열고 선물을 나눠 드렸다.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삑삑’ 소리를 내며 악기를 만지고 연주해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성경과 전도지, 선물을 함께 나눠주며 복음을 전했다.

그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오케스트라 연주로 복음성가를 다시 들을 기회가 또 있을까. 이 어린이들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사역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찬양곡을 감상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됐다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성경책과 복음을 접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어린이들은 나중에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이때를 떠올릴 것이다. 전도자를 만난다면 이때 어렴풋이 알게 된 예수님을 기억해낼 것이다.

우리 가족이 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딸 온유와 아들 충성이는 각각 중학교 2학년, 1학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온유는 바이올린을, 충성이는 클라리넷을 조금 배웠다. 태국에 오기 전 두 달간 문화센터에 등록해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어린이들의 작은 재주까지 사용하신다. 태국에 와서 맞는 교회의 첫 성탄절 행사에서 온유와 충성이는 성탄곡을 연주했다. 한국에서 배운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국 어린이들은 행사 뒤 바이올린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중고 악기가 몇 대 마련됐다. 온유는 바이올린을, 충성이는 클라리넷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문화센터에서 배운 재주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얼마 뒤 온유가 피아노를 가르치며 하는 말은 이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있을 때 피아노를 좀 더 열심히 배울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좀 더 잘 가르칠 수 있었을 텐데.”

그리스도인은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사용하도록 하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열심히 배워둬야 할 것 같다.

선교지에는 한국에서 많은 팀들이 문화선교를 목적으로 찾아온다. 현지인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한 도구로써 사물놀이나 부채춤, 악기, 태권도, 찬양, 워십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해 온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가르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현지 어린이들에게 준비한 것들을 다 가르치려고 하다 보면 가르치는 사람의 욕심이 앞서게 된다. 완벽하게 가르치고 싶어진다. 그러면 전하려던 복음의 핵심은 흐려지고, 어느새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선생님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이곳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생님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호흡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사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생을 두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도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호흡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거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내 평생의 기도다(빌 1:11).

믿음 없이 교회에 나올 수는 있다. 믿음 없이 교회 건축도 할 수 있다. 믿음이 깊지 않아도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믿음 없이 기도할 수는 없다.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물든 생명을 내 생명으로 품고 살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는 바로 내 평생의 질문이다.

김도연 선교사

△1961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장신대, 2005년 장신대 신대원 목회연구과정 졸업 △2005년 장기 선교사로 태국 도착 △2007년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에서 목사안수 △2012년 태국 순회선교센터 창립 △현재 태국순회선교사역, 태국어성경무료보급, 태국어 전도자료 무료 보급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