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노역 배경’ 향판제 구체적 개혁안은 없었다

입력 2014-03-29 02:54 수정 2014-03-29 15:39


‘일당 5억원짜리 황제 노역’은 사라지고 노역 일당은 대폭 낮아졌지만 여전히 고액 노역의 여지는 남아 있다. 새 노역 기준이 확정돼 실제 재판에 적용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황제 노역의 한 배경으로 지목받은 ‘향판(鄕判)제’의 구체적인 개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허 전 회장에 소급적용되진 않아=대법원은 28일 열린 전국법원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 1억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원칙적으로 1000일 동안 노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1000일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법에서 정한 기간 내에서 최대한 노역 일당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현행법은 벌금 미납자에 대해 1일 이상 3년 이하의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1000일이 일종의 절충점인 셈이다.

벌금액에 따른 노역일수 하한선도 정했다. 1억~5억원 구간은 300일, 5억~50억원은 500일, 50억~100억원은 700일, 100억원 이상은 900일이 하한선이다. 다만 벌금형과 함께 징역형도 선고받은 사건에서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과 피해 변제 여부 등을 고려해 한 단계 낮은 구간의 기준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열어뒀다. 이 방안을 적용한다면 벌금 254억원을 납부하지 않은 허 전 회장은 원칙적으로 1000일, 예외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최소 700일 이상은 노역을 해야 한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이미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새 기준이 확정되더라도 소급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재판부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어 기준안이 실제 재판에 적용되기까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향판제’ 개혁 방안도 지켜봐야=이날 회의에서 향판(지역법관)제도도 안건으로 논의됐다. 2010년 허 전 회장에게 벌금 미납 시 노역 일당 5억원을 책정한 항소심 재판장은 장병우 현 광주지법원장이다. 장 원장은 29년간 광주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한 대표적인 향판이다. 허 전 회장의 변호사 상당수는 지역법관 출신이다. 때문에 허 전 회장에 대한 관대한 판결은 향판제 폐지 논란으로 번졌다.

회의 참석자들은 향판제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과 지법부장→고법부장→법원장 승진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다른 지역 순환근무를 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역법관 제도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회의 참석자들도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향판제 정비는 법원의 인사이동 시스템과 직결된 문제라 이른 시일 내에 뚜렷한 결론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