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드레스덴 선언’] 신뢰프로세스 구체화…‘통일대박’ 방법론 제시

입력 2014-03-29 03:20 수정 2014-03-29 15:27


박근혜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드레스덴 공대 명예박사학위 수여 답례 연설문을 가다듬었다. 이미 서울을 출발할 때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결정돼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독일의 통일 흔적을 돌아보며 느낀 감동과 통찰을 이번 선언에 담았다.

박 대통령이 밝힌 선언의 핵심은 자신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을 세부적 3단계 방법론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가장 먼저 ‘비핵화 없는 3대 제안’, 즉 ‘인도적 지원+공동번영 인프라 구축+양측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을 통해 남북이 낮은 단계의 신뢰를 쌓아나가면서 북한의 핵 포기 여부에 따라 대규모 경제 지원에 나서고 마지막으로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원칙에 입각한, 대대적인 북한 지원’으로 요약되는 이 구상은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을 충분히 고민하면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는 과정을 거친 뒤 나온 박근혜식 대비책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을 내놓으며 인도적 교류에서 경제적 지원, 정치·군사적 대화 테이블 개설에 이르기까지 남북 양측의 ‘신뢰 쌓기’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한층 더 구체화한 것으로, 북한의 낙후된 통신 교통 도로 항만 등 인프라를 재건하고 피폐된 북한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양측 주민 간 동질성 회복과 인도적 교류를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할 것인지 등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다음 단계의 ‘신뢰 쌓기’를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이나 국제사회와 남한이 함께 나서는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 등은 반드시 ‘북핵 포기’라는 전제 하에서만 출항할 수 있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번 선언에서 “필요하다면 동북아개발은행을 만들어 북한의 경제발전과 주변 지역의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발언이 “핵을 포기해 진정 주민들의 삶을 돌보길 바란다”는 문장 뒤에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3대 제안’은 연설 전날 만났던 통일 독일 관련 인사들의 조언에서도 강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라이너 에펠만 통독 당시 동독 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을 일으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에펠만 전 장관은 이어 “이를 위해 남북 간 인적 교류가 지속돼야 한다”고도 했다. 통일이 단지 체제와 경제적 통합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주민들의 정신적·문화적 통합으로 승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남북 간 인적 교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단계적 접근방법이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특히 현재로선 요원해 보이는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북한에 대대적인 경제협력,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실현 가능성도 낮다는 의미다. 남북 교류협력과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을 여전히 북핵 문제와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의 여러 대북 구상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과 시너지 효과만 부각됐을 뿐 북한의 호응을 이끌 만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았거나 기존 구상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드레스덴=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