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공식된 ‘자백→ 기소→ 진술번복’
입력 2014-03-29 02:56 수정 2014-03-29 15:40
유우성 간첩사건 증거위조 이후 국가정보원 수사를 거친 다른 간첩 혐의자들의 진술을 놓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검찰이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민변은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에 무고한 사람들이 허위 자백을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일관되게 자백하던 이들이 민변만 만나고 나면 진술을 바꾼다’며 불편한 기색이다.
민변은 27일 “간첩 혐의로 기소된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 홍모(40)씨가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허위 자백했다고 털어놨다”며 사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홍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 독방에 6개월 동안 감금돼 조사받으면서 회유·협박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검찰의 입장은 완전히 상반된다.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며 자필 반성문까지 써서 법원에 냈던 홍씨가 27일 오후 1시간30분 정도 민변을 접촉하더니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민변은 선임계를 낸 뒤 홍씨를 만나 “검사 면담이나 소환에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실제 홍씨는 당일 “검사를 만나지 않겠다”며 구치소로 돌아갔으며, 28일 소환에도 불응했다.
검찰과 민변의 날 선 신경전도 전개되고 있다. 변호인은 홍씨를 접견한 뒤 담당 검사실로 찾아와 “기소 이후에 피고인을 부르는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인거 모르시냐. 증거 조작하느라 힘드시죠”라고 공격했고, 이에 검사는 “지금 모욕하는 거냐”고 대응했다고 한다. 변호인은 “기자회견장에서 보자”며 사무실을 나간 뒤 조작 의혹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우성씨 사건의 경우 유씨 여동생 가려씨는 합신센터에 6개월간 머물 때 ‘오빠는 간첩이 맞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했다. 민변 장경욱 변호사는 “무고한 탈북자들이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독방에서 장시간 허위 자백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간첩 혐의자들이 민변 때문에 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심리적 불안과 중압감 등으로 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진술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가려씨의 변호인 접견 및 서신 전달을 금지한 것은 위법했다는 법원 결정도 나온 바 있다.
반면 검찰은 간첩 혐의자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쪽은 오히려 민변이라는 입장이다. 여간첩 이경애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간첩임을 자백했던 이씨는 2012년 7월 첫 재판준비기일이 열린 직후까지도 국정원장 앞으로 변호사가 거짓 진술을 유도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 재판이 시작되자 180도 말을 바꿨다. “국정원에서 하루 100장씩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폭행과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5년을 확정했다. 검찰 간부는 “인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좋지만 요즘 (민변이) 나가도 너무 나간다. 모든 간첩 사건을 조작이라고 할 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